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Doctor Strange in the Multiverse of Madness (2022) by 멧가비


기대치가 맥시멈을 찍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MCU 영화 고용감독 사상 가장 큰 거물. 호러와 슈퍼히어로 두 장르에서 이미 영광스러운 챔피언 벨트를 가지고 있는, 그저 구 레전드가 아니라 아직도 평가가 유효한 장르 마스터. 무덤에서 손을 뻗쳐 올린 시체처럼, 언젠가부터 은둔 고수가 되어버린 샘 레이미가 그렇게 자신의 주특기를 펼칠 수 있는 장으로 돌아오는 영화니까. [크라임웨이브] 같은 초기 범작이라든가, [오즈 그레이트 앤 파워풀] 등 실망스러운 필모도 있지만 그것들로 퇴색되지 않을 만큼 레이미의 두 삼부작이 장르사에서 갖는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아니 그런데 생각을 해 보면, 장르만 호러고 장르만 슈퍼히어로다 뿐이지 정작 레이미가 잘 하는 것들은 대부분 봉인 된 채다. 과장된 피범벅 폭력과 슬랩스틱의 결합을 마블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애쉬처럼 멀끔한 얼굴로 주책바가지 코미디를 한다고? 심지어 감정과 감정이 충돌하는 영화인데 그 캐릭터들은 샘 레이미가 직접 서사를 쌓아놓은 자식들도 아니다. 서장훈을 코트에 다시 불러와놓고선 골밑에 들어가지 말고 슛도 쏘지 말라는 격이다.


말인 즉슨, 전성기 [이블 데드] 혹은 [스파이더맨] 삼부작 같은 근사한 마스터피스를 뽑아내기엔 운신의 폭이 심하게 좁았다는 말이다. 이 영화가 기존 MCU의 영화들과 차별화 되는 지점 중 하나라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악당이 또 영웅에게 응징당하는 패턴에서 조금 벗어나,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가장 막강한 적으로 나타나 대립하는데에서 오는 드라마성. 하지만 그것은 드라마 시리즈 [완다비전]이 쌓은 전사(前史)의 덕을 본 것이고 거기에 레이미의 공은 없다. 이 영화만으로 따지자면 스칼렛 위치 역시 다짜고짜 나타난 악당일 뿐. 물론, 무덤에서 돌아온 시체라던가 잘못 사용된 마법책, 이세계 포탈, 마녀에게 노려진 소녀 등 소소한 레이미 요소들에 한해서는 어쩐지 신나게 찍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긴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단지 레이미를 얼굴 마담으로만 내세운 그저 그런 범작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썩어도 준치, 짬바는 어디 안 가지. 골밑 들어가지 말고 슛 쏘지 말랬다고 서장훈이 코트에서 아무 것도 못 하겠는가. 적토마 언월도 뺏는다고 관운장이 전쟁을 못 하겠냐고. 적어도 이 영화는 MCU 사상 가장 화려한 연출 테크닉, 가장 인상적인 장르 시퀀스들로 채워진 영화다. 원래 레이미는 작가보다는 테크니션, 스타일리스트 타입의 연출자였던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악보 배틀에 대해서는 조금 심경이 복잡해진다. 레이미 특유의 악취미적인 유머가 들어간 것 같은데, 하필 스트레인지 끼리의 일기토에서 너스레를 떨 필요는 있었나.


여기서 레이미는 완다라는 "타락한 마법사" 캐릭터를 구성함에 있어서 7080 부기맨들을 집대성하는 재주를 뽐낸다. 여기서의 완다는 제이슨 부히스요 프레디 크루거이며 잭 토런스다. 게다가 완다의 폭력성 밑에 깔린 분노의 감정선도 고려하면 완다는 또한 [캐리]이며 다스베이더이고 백발마녀이기도 하다. 심지어 사다코보다 더 사다코 같다. 어쩌면 수미쌍관인게, 완다의 첫 등장, 그러니까 [윈터 솔저] 쿠키에 잠깐 나왔던 그 불길한 마녀의 이미지가 이제서야 제대로 구현된 거다. 그리고 레이미는 자신의 영화들에서 끊임없이 변주했던 악당의 스테레오 타입, 죽음에서 돌아온 흉측한 괴물을 오히려 주인공의 마지막 히든카드로 내미는 과감한 포지션 체인지도 보여준다. 이 영화의 알짜배기 신 스틸러는 누가 뭐래도 좀비 스트레인지야.


완다는 피의 악당으로 완성되는 길을 은근히 정석적으로 차근차근 밟아 온 캐릭터이기도 한데, 그래도 그렇지, [완다비전]에서의 두 아들이 완전히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알고보니 어딘가의 멀티버스에서 끌어 온 애들이었고, 아이들을 잃은 그 멀티버스의 완다가 흑화해서 침공해 온다, 정도로 타협할 거라 예상했다. 메인 우주의 완다 본인을 이렇게 얄짤없이 나락까지 떨어뜨릴 줄이야. 완다라는 캐릭터는 결국 망할놈의 "드라마 퀸"이었던 거지. 생식 기능 없는 인공지능 단말기와 사랑에 빠져 있지도 않은 망상 아들들을 만들어 놓고선 모든 걸 잃었다며 남 탓 세상 탓을 하는 격이다. 엘리자베스 올슨이 배역을 맡지 않았다면 관객들에게 그저 미움만 받을 요소로 가득한 캐릭터였을 것이다.


끝에 가서 순식간에 개심한 감정선, 나는 그게 이해가 된다. 완다는 늘 외부적인 요인으로 불행했고 그래서 늘 타인으로부터의 위협을 경계하는 인물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완다 자신이 또 다른 자신과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려는 위협 세력, 즉 완다 스스로가 토니 스타크나 울트론, 타노스처럼 되어버린 걸 한 순간에 자각한 거다. 떡 팔러 나간 엄마 잡아먹고 집에 찾아온 호랑이라도 본 듯 벌벌 떠는 아들들을 마주했는데, 태생부터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그 시점에서는 바로 정신이 돌아오는 게 맞지. 






연출 샘 레이미
각본 마이클 월드론

덧글

  • 더카니지 2022/05/08 22:12 #

    소니가 관여한 MCU 스파이더맨3: 멀티버스뽕 팬서비스제대로 채워줌
    디즈니가 간섭한 닥스2: 김빠진 멀티버스뽕에 팬들 능욕(정신계 최강자가 우둑)

    그나저나 제임스 완의 아쿠아맨도 그렇고 샤잠도 그렇고 이번작도 그렇고 호러물 출신 감독들왜 굳이 슈퍼히어로물에서 -나 호러영화 감독이야!!- 븐심부리는듯한 호러씬을 왜 굳이 넣는걸까 싶군요
  • 멧가비 2022/05/09 21:03 #

    특정 장르에 강한 연출자를 고용한다 = 잘 하는 거 해라
    당연한 거죠
  • 듀얼콜렉터 2022/05/10 11:38 #

    개인적으로 멀티버스에 대한걸 많이 기대하고 봤는데 닥터 스트레인지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셔 있어서(당연한것 아닌가, 닥터 스트레인지 영화인데 ㅋㅋ) 보면서 좀 당황했습니다 ㅎㅎ

    개인적으로 재밌게 보긴 했는데 아직까지는 페이즈4의 빅픽쳐가 뭔지는 보이지 않았던것 같네요. 얼마있다 나오는 토르 신작도 그냥 토르의 마무리겸 레이디 제인에게 바톤터치할 느낌이라 페이즈5까지는 가야하나 싶기도 하구요.
  • 멧가비 2022/05/10 15:22 #

    초기부터 최종 목표가 제시됐던 페이즈1~3이랑은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네요 판만 너무 벌려놓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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