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2018) by 멧가비


영상을 진짜 잘 찍는다. 드라마 도입부의 겨울은 TV 화면을 뚫고 나와 내 손 까지 시리게 만든다. 그렇게 서러울 정도로 추운 겨울에서 시작해 쓸쓸함을 치유하고 결국은 화사한 봄에 마무리 되는 구조가 좋다. 기획마저 섬세하고 따뜻해.


아저씨 동훈은 모든 것을 혼자 다 짊어진 채로 자기 자신도 너무 아픈데 남의 아픔까지 봐 줄 수 있는 "어른"이고, 지안은 남들이 아프다고 주저앉을 만한 모든 일들을 작은 몸의 여력까지 쥐어 짜내 견디고 있는 야생 동물 같다. 그 둘이 만나 서로의 공허함을 발견해 준다. 공감,공감한다라는 단어가 실제로는 얼마나 무의미하고 공허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지금 당장 아프지 않은 사람은 아픔을 공감할 수 없다. 그들의 관계는 서로로 하여금 편안함과 행복의 인과관계에 대해 성찰하도록 돕는다. 편안하면 그것이 행복이다. 가시방석 같은 직장과, 채권자가 흙발로 들이닥치는 단칸방을 "공간"으로 삼아 드라마가 시작하는 것은, 그 둘이 아직은 행복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아는 것을 모른 척 견디는 동훈에게도, 아무도 세상을 가르쳐 주지 않아 모든 게 세상에 섞이는 것이 서툰 지안에게도, "우리는 아프고 슬프다"라는 말을 꺼내 얘기해도 되는 사람이 서로 처음이었기에, 그들은 서로에게 있어 현실이라는 지옥을 조금은 좋게 바꿔도 된다는 하나의 발견이고 무거운 하나의 내딛음을 밀어주는 손이었다.


물론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의 전작처럼 이 드라마의 인물들 역시 알게 모르게 비틀린 구석을 가진 인간들이다. 부모형제로부터 직장 동료들로부터 동네 친구들로부터 온갖 좋은 평판은 다 듣는 박동훈은 정작 자기 손으로 꾸린 가정에는 소홀했으며, 주변으로부터의 걱정을 스트레스로 느끼면서도 그 스트레스의 유입을 그대로 방치하는 자기학대적 인간이다. 지안은 중견기업 파견직과 식당 알바 등 평범하고 안전한 생활에 대한 욕망을 놓지 못하면서도 언제든 기회만 되면 다시 범죄에 손을 대는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그러니까 내게는 이 드라마가 단순히 결핍을 가진 어른과 아이가 만나 서로를 치유해주는 동화같은 이야기라기 보다는, 비틀린 사람들이 만나 갱생시켜주는 고해성사 같은 이야기다.


아이유 눈동자 연기가 끝장이다. 처음의 지안은 츄르 냄새를 맡고도 다가오지 않는 경계심 강한 길고양이처럼 날이 서 있다. 그리고 동훈을 점차 알아가면서 동훈이 말 할 때, 동훈이 나타날 때는 갑자기 눈이 리트리버가 된다. 거기서 드라마의 온도가 결정이 나버린다.





연출 김원석
각본 박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