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구와 땡칠이 (1989) by 멧가비


존 벨루시의 블루스 브라더스, 윌 패럴의 록스버리 가이즈, 마이크 마이어스의 웨인즈 월드 등 이미 헐리웃에도 코미디언의 기존 스케치 캐릭터를 차용해 만든 영화들의 역사가 있다. 한국에서 그러한 패턴은 실질적으로 (드라마 [여로]를 패러디한 [유머1번지 - 영구야 영구야]의 극장판 격인) 이 영화로부터 시작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앞 세대인 이주일은 주로 스탠딩 무대에서 선 보인 이주일 본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영화에 투영하긴 했지만 심형래의 영구처럼 확실한 틀이 잡힌 "캐릭터"를 갖고 간 사례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스케치 캐릭터의 극장으로의 확장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할 뿐, 신경써서 만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공들인 영화라기 보다는 국민학교 방학 시즌을 노린 한철장사용 물건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점은 분명하다. 서구 몬스터들과 시골 총각의 조우에서 오는 캐릭터 충돌을 코미디의 주 동력으로 삼았다면 시대를 앞선 흥미로운 어린이 컬트 코미디가 될 가능성도 조금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그냥 심형래의 슬랩스틱, 영구가 괴물들을 해치운다는 단순 권선징악의 한계 안에서만 머문다. 즉, 심형래 전매특허 음흉한 바보 캐릭터와 "유니버설 호러 몬스터"들의 재현이 영화의 전부라는 말이다. 특히 박승대가 분한 괴물들의 두목은 [프랑켄슈타인]에서의 보리스 칼로프를 그대로 따라한 캐릭터이며 정태우의 꼬마 강시는 [강시가족]과 [유환도사] 등의 카피, 즉 유니버설 호러 괴물들 외에 당시 홍콩, 대만에서 건너 온 강시붐에 편승한 면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몬스터들 중 꼬마강시만이 아군이라는 설정으로 봐서는, 나머지 몬스터들이 아예 강시붐에 대한 구색맞추기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 와중에 처녀귀신은 일본 고전 괴기영화 속 이미지인 머리 풀어헤치고 소복 입은 처녀귀신의 모습 그대로인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도깨비랍시고 일본 오니 까지 등장 시키지는 않았다는 점. 물론 이 부분은 이 영화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 고유 문화와 일재 잔재를 아무도 구분해내지 못했던 시대의 한계다.


이런 영화가 비공식적으로 전국 수백만 관객을 끌어들였다는 건, 뭐든 베끼면 돈이 되던 허술한 시대, 그리고 어린이들이 즐기면서도 동시에 자랑스러워 할 퀄리티 좋은 서브컬처가 부재했었다는 사실 등을 증명할 뿐이기에 씁쓸하다. 장점 한 가지, 어린이들 코 묻은 돈 빨아들이려고 대충 이것 저것 기워서 만든 시즌 상품 치고는 군데군데 호러 연출이 꽤 나쁘지 않은 구석이 있다. 아동용 메이저 영화에서 처녀귀신이 칼 가는 장면 나온 게 이 영화가 아마 처음이 아니었을까. 





연출 남기남
각본 장덕균

덧글

  • 잠본이 2022/05/10 15:45 #

    유머1번지의 영구야 영구야 초기 타이틀엔 '원작따로! 코미디따로!'라는 부제가 있을 정도로 패러디임이 확연했는데 이젠 영구의 이미지 혼자만 살아남아 뿌리를 내렸으니 참 세상일은 알수가 없군요.
  • 멧가비 2022/05/10 22:06 #

    복제가 원본을 집어삼킨 점에서는 그야말로 장 보드리야르적이네요
  • 잠본이 2022/05/11 09:13 #

    글자 그대로 바디 스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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