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 러브 앤 썬더 Thor: Love and Thunder (2022) by 멧가비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신앙에 관한 아이러니"라는 테마가 주요 인물 세 사람의 개인 서사에 공통 분모로 들어가 있는 점이 꽤나 근사하다. 어쩌다 우연히 마주친 악당이 아닌, 주인공과 결이 같거나 같은 요소에 목적을 가진 악당이 나올 때 슈퍼히어로 영화는 준수해지는데 이 영화는 거기까진 해 준다.


토르는 자신도 일단은 신이면서 다른 신들, 특히 제우스에 대해서는 거의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동경심을 드러내지만  정작 그 제우스의 손을 빌릴 필요도 없이 토르 본인이 더 강한데다가 스톰브레이커와 묠니르 두 개가 있는데도 굳이 탐낼 정도로 썬더볼트가 대단한 무기도 아니더라. 뭣보다 "신"이라는 자의식이 거의 없는 토르가 한껏 "신뽕"에 취해있는 신들의 수장 제우스보다 더 "신"이라는 기대치에 걸맞는 그릇을 가졌다는 점이 아이러니.


제인은 근본부터가 신앙이라는 것과는 가장 거리가 먼 과학자다. 그러나 신에게 외면 받은 두 남자와 달리 가장 "신"의 축복을 확실하게 받은 수혜자이기도 하다. 묠니르 덕분에 암세포도 토르가 된 건지, 고르와 마찬가지로 아무튼 신의 권능을 얻었으면서도 인간으로서는 오히려 더 빨리 죽어가고 있지만, 병들어 죽어가는 모습이 역력한 고르와 달리 오히려 마지막 생명력을 뛰어난 신력으로 치환해 금빛으로 아름답게 산화한다. 이는 죽음 앞에서의 태도 차이에서 나뉘는 결과다. 고르와 정확히 대비되는 캐릭터는 토르가 아니고 제인.


고르는 시작부터 아이러니한 캐릭터. 현실로 치면 수혈 거부라던가, 인간 본연의 노력없이 신앙에만 매달리다가 죽어가는 광신도를 은유한 캐릭터인데, 그런데 정작 이 세계관에는 실제로 그들이 모시는 "신"이 실재한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그렇다면 고르가 가진 복수심은 독실한 신자로서의 정당한 권리 투쟁인지 광신도의 공허한 앙심인지에 대한 딜레마를 안게 된다. 네크로소드를 손에 쥔 흉악한 냉담자가 되어 신들을 학살하고 다니는 이후에도 정작 최종 목표는 신 이상의 존재를 만나 소원을 빌려는 것, 이 역시 아이러니다. 즉 이 인물은 신 학살자를 자처하지만 처음이나 끝이나 계속 기복신앙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이렇게 캐릭터들의 개인 서사에 놓여진 주제의식, 그리고 그것들이 충돌하거나 나란히 서는 플로우는 좋은데, 그 캐릭터 하나 하나가 가졌어야 할 매력 자체는 떨어진다는 점에서 영화에 가해지는 혹평이 이해된다. 고르는 "신 도살자"라는 거창한 이명에 비해 실제적으로 묘사되는 부분만 보면 그냥 망태 할아버지고, 제인은 나탈리 포트먼이라는 배우의 아우라를 제외한다면 주인공의 배경에서 리액션만 하는 전형적인 "상대역"에 지나지 않았는데 갑자기 컴백해서는 분에 넘치는 기적을 행하시고 있다. 시프와 더불어, 찜찜하게 더미 데이터로 남아있는 여캐들 짬처리 하는 거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그 퍼포먼스가 너무 거창하다. 토르는 와이티티가 감독한 영화에서는 유독 더 바보같다.


확실히 와이티티식 머저리 코미디가 이번에는 조금 과하다. 토르는 [엔드게임] 이후 세상만사 다 해탈하고 구도자가 된 척 하더니만 전여친 만났다고 다시 바보로 퇴행했고, 토르와 스톰브레이커의 러브 코미디는 1절 2절을 넘어 크리피해지기 직전 까지 간다. 장 끌로드 반담 흉내 내는 초반 까지가 딱 좋았다. 신들의 회합은 그냥 바보 집회 같은데, 이 부분은 [돈 룩 업]처럼 해학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 마저도 아니고.


유치하다는 평이 대부분 여기서 나온 게 아닐까 싶은데, 클라이막스의 토르 아람단 씬 난 거기가 제일 좋더라.





연출 각본 타이가 와이티티

덧글

  • 잠본이 2022/07/14 17:06 #

    > 묠니르 덕분에 암세포도 토르가 된 건지,

    후지코 후지오의 모 슈퍼맨 패러디에서 초인적인 힘을 얻어 타락한 주인공을 아무도 막지 못했는데
    그의 몸속에 자라던 암세포도 슈퍼급이 되는 바람에 결국 자멸했다는 내용이 떠오르는군요(...)

    토르 아람단(폭소)도 그렇고 갑툭튀한 헤임달 아들이나 결말의 누구씨(스포일러)도 그렇고
    마블이 슬슬 차세대 관객을 키우려고 시동걸고 있구나라는 생각밖에 안 드는(...)
  • 멧가비 2022/07/15 15:42 #

    파-만인가요? 그런 내용이 있었나 기억이 안 나네요
  • 잠본이 2022/07/15 16:19 #

    http://waterlotus.egloos.com/3517512
    1회성 단편인데 꽤 묵직합니다.
    주인공은 퍼맨을 비롯한 여러곳에서 라면먹는 이웃집 아저씨로 나온 분(...)
  • 듀얼콜렉터 2022/07/15 07:26 #

    저도 봤는데 라그나로크 보다는 못한것 같더군요. 뭐 토르가 더 이상 성장할 여지가 없어서 오히려 후퇴한 기분도 들고 결말의 갑툭튀도 애매했습니다. 근데 토르가 아직 더 나온다고 하니 다음에 뭘 보여줄지 기대반 걱정반이네요.
  • 멧가비 2022/07/15 16:12 #

    영웅이라고 해서 꼭 성장담이 수반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말씀처럼 와이티티 영화에서는 유독 퇴행한듯 바보같아지더라구요
  • SAGA 2022/07/16 10:27 #

    왜 토르가 바보로 퇴행된 건지... 라그나로크에서 인피니티 워까지의 토르는 이미 정신적인 성장을 끝냈고, 나름의 행동 당위성도 있었는데... 엔드게임부터 토르가 이상해졌어요... 아니, 백성을 위해서 남은 삶을 바치겠다던 아스가르드의 왕이 왜 게임 폐인이 되어있냐고!
  • 멧가비 2022/07/16 16:00 #

    저는 뚱토르 까지는 이해가 됩니다 우주 최고 왕국의 왕이 될 교육을 받은 자가 지구 변방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알아서들 잘 살아나가는 난민들을 데리고 뭘 할 수 있었겠습니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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