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택이라는 공간은 일반 주택보다 넓다는 점에서 부에 대한 욕망을 상징하지만 반대로 집이 넓기 때문에 다른 공간이 불필요하다는 점, 저택을 배경으로 하면 저택만 나와도 된다는 점에서 반대로 폐쇄적이다. 저택 스릴러에서 충돌되는 두 가지의 정서, 한국 최초의 저택 스릴러인데 최초일 뿐 아니라 여기서 이미 하나로서 완성된다. 영화의 전제는 욕망의 충돌이다. 크고 작은 욕망이 부딪히고 뒤엉키는데 그것들은 저택 바깥으로 환기되질 못한다. 그 들끓는 뜨거운 욕망의 증기 때문에 저택 어딘가에는 습하게 김이 서려있을 것만 같다.
60년대 신흥 부유층인 동식은 그림에 나올 법한 완전한 가족을 욕망한다. 그러나 무리해서 마련한 주택 융자를 해결하기에 자신의 돈벌이는 부족하고, 때문에 여자가 집에서 얌전히 살림만 하는 것을 모범으로 여기던 시대에 아내를 부업 전선에 내놓을 수 밖에 없다. 동식의 아내도 죽은 듯 상황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구시대 여인은 아니며 아들딸은 자잘하게 자꾸 뭔가를 요구하며 칭얼댄다. 보수적인 60년대 가장이 꿈꿀만한 가정의 그림에서 무언가 조금씩은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하녀의 욕망은 오로지 상류층 가정에 침투해 주도권을 잡는 것 단 하나 뿐이다. 그리고 그 단순한, 단순해서 더 강력한 욕망을 소름끼칠 정도로 매끈하게 이뤄내는 동안 동식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영화 속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동식은 "하녀"를 이길 수 없다.
영화 외적인 얘기를 하자면, 한국전쟁 이후 전 국민이 불철주야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 가정에 상주하는 가사노동자를 고용해야 할 필요성 또한 생겨나게 되었을 것이다. 자산으로 분류하던 조선시대 노비가 사라진 이래, 생판 모르는 "사람"을 고용 형태로서 집안에 들인다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불안감이 생기는 것은 한 편으로는 이해가 되는 일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옛날 양반 수염쟁이들이 아랫 사람들을 오죽 건드려댔으면 그랬겠나 하는 한심한 생각도 들고. 집에 사람은 필요한데 그 사람이 집안을 망칠 것이다라는 모순적이고 계층 혐오적인 공포는, 이은심에 대해 마치 존재 자체가 재앙의 근원인 것처럼 이물감 있는 묘사를 하고 있는 점을 통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지방 극장 배급을 위해 추가한 분량, 영화 속 치정극을 극중극으로 설정한 일종의 메타픽션적 액자 구성은 영화의 완성도를 해친다는 게 중론이고 감독 본인도 맘에 들지 않아했다고 하던데, 내게는 그 추가 결말 쪽이 더 입체적이고 흥미롭다. "가정부 들였더니 주인집 남자랑 바람났더라"라고 수근대거나 황색 언론 등에서 가십으로 다루던 소리는 80년대 까지도 유효한 유서 깊은 일종의 한국식 도시 전설인데, 이 영화의 액자 구성 결말이 마치 그에 대해 "당신들이 껌처럼 씹고 떠드는 남의 가정사"에 사실은 이런 비극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시니컬하게 반문하는 듯 보여서 그렇다.
김기영 감독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한창 영화를 활발하게 찍을 당시 실제로 돈벌이를 한 것은 당시 김기영의 아내였다고 한다. 영화 속 동식은 방직공작 직원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즉 생산성이 전혀 없는 불안한 직업을 갖고 있는 남자, 즉 어느 정도 자전적인 측면이 있다. 그래놓고선 전소 된 한옥 자택에서 사후 발견된 유서에는 본인이 사지 말자던 집을 아내가 우겨서 샀다는 뒷담화도 쓰여 있었다고 하더라. 간헐적으로 드러난 그의 면모들이 뭔가 묘하게 이 영화의 톤과 일치한다. 가히 김기영 본인의 아이러니한 블랙 코미디적 아이덴티티가 아낌없이 때려부어진 김기영 그 자체인 영화인 것이다.
연출 각본 김기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