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전쟁 War of the Worlds (2005) by 멧가비


내게 이 영화는 내외적으로 몇 가지 부당한 평가를 받는 영화다. 먼저 가장 논쟁적인 문제의 그 "결말"에 대해. 내내 팽팽하게 유지되던 긴장감과 공포가 일순 허물어지는 듯한, 미생물의 공격이라는 어쩌면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이기도 한 결과.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것이라서 좋다. 지구를 지켜내는 게 반드시 인간일 필요는 없질 않은가. 외계인들이 공격한 건 인간인데, 인간을 구원하는 건 미생물이라니. 지구의 지배자로서 만물 위에 군림한다고 착각하는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통렬한 일침이다.

그리고 주인공 레이를 "별 볼 일 없는 한량" 쯤으로 정의내리는 평가 역시 정정하고 싶다. 주인공 레이는 사실 나쁘지 않은 남자다. 직장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능력을 인정 받고 있으며 동네 사람들과도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자기 직업도 아닌 자동차 수리에 센스가 있으며 외계인 침공으로부터 도망칠 타이밍을 알고 자동차를 훔칠 과감한 판단력도 갖고 있다.


문제는 이 남자가 자기 혼자서 잘 해내는 남자이지 자식들을 건사할 리더의 그릇이 못 된다는 점이다. 어린 딸이 과호흡 증상을 보이는데도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며 돌연 군대에 합류하겠다는 아들을 끝내 막지도 못한다. 즉 자신만만했지만 사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어떤 남자에게 가정, 자녀란 어느날 갑자기 들이닥친 천재지변 혹은 테러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는 은유. 해당 나이대의 남자 관객에게 이 영화는 여러가지 의미로 호러일 것이다.


여느 재난물에 등장할 법한 듬직한 과학자나 리더 대신 자식들로부터도 신뢰를 못 얻은 못난 아빠가 주인공, 덕분에 이야기는 주인공에게 달아날 선택지 외에는 아무 것도 제공하지 않는다. 대재앙에 맞서 싸우는 팍스아메리카나 마초 영웅 주인공 대신 보통의 재난물이었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엑스트라 중 한 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건, "9/11" 이후 미국인들에게 "침공"과 "재난"이라는 텍스트가 더 이상 모험과 액션으로 소비할 장르 컨텐츠만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패스츄리처럼 까도 까도 나오는 다층의 공포 메타포를 깔아놓은 스필버그의 노련함이 새삼 돋보인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는 스필버그의 연출력 전시장이기도 하다. 홈 드라마, 괴수물, 재난물 등의 베이스 장르를 이 한 영화에서 능숙하게 전환시키고 있으며 자동차 뺏기는 시퀀스는 좀비물, 오길비의 집은 사이코 스릴러의 무대로 삼기도 한다. 가족주의를 늘 어필하는 SF 전문 감독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그의 본류는 사실 서스펜스 호러인데, 그게 무슨 대수냐는듯 여기서 그걸 다 한다. 스필버그는 헐리웃을 대표하는 거장이자 그의 영화를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영화라는 매체 그 자체의 얼굴 중 하나이기도 한데, 나는 그럼에도 스필버그가 지금 받는 평가 이상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테크니션으로서 그가 어떤 평가를 받든 그 역시 저평가라고 주장하는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두 개의 영화가 [쥬라기 공원]과 바로 이 영화였다.


원작은 은근히 실사로 여러 번 구현된 레퍼런스이기도 한데, 다음에 또 영화로 제작될 때에는 원작 그대로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삼길 바래본다.






연출 스티븐 스필버그
각본 데이빗 코엡, 조시 프리드먼
원작 허버트 조지 웰스 (소설 [The War Of The Worlds], 1898)

덧글

  • 잠본이 2022/09/20 10:08 #

    톰아저씨를 주연으로 했으니 마초루트로 가기도 쉬웠을텐데 일부러 그렇게 안했다는게 포인트죠.
    미생물 엔딩이야 뭐 원작에서부터 내려온 유구한 전통이라 어떻게 바꾸기도 어려움(...)
  • 멧가비 2022/09/20 12:00 #

    맞습니다 그게 포인트죠 톰형이 외계인이랑 멋지게 싸우고 그 결말도 헐리웃 돈 주는 인간들이 바꾸려면 바꿀 수도 있을텐데 놔뒀다는 점이요 스필버그가 감독이 아니었으면 바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 엑스트라 2022/09/20 11:20 #

    지숙적으로 많이 본 영화 중 하나였다는. 이때는 영화 제대로 찍었다는 느낌이 팍팍 났었죠.
  • 멧가비 2022/09/20 12:01 #

    입자 거친 필름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뭔가 더 정통 느낌이 나기도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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