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 by 멧가비


큰 힘에 큰 책임을 지려는 거미 인간도 아니고 모든 멀티버스에서 위험인물로 지목 당한 마법사도 아닌, 에블린, 인생의 모든 선택의 순간에서 실패만을 경험한 누군가의 딸이자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또한 누군가의 아내인 자, 바로 에블린. 모두 똑같이 동그란 창문을 달고 있지만 그 안에는 모두 다른 빨래가 돌아가고 있는 빨래방 세탁기들처럼, 에블린은 모두 같은 에블린이지만 모두 다른 인생을 사는 멀티버스를 넘나드는 빨래방 주인, 알파버스에서 점프해 온 알파 에드워드가 기대를 건 바로 그 "이쪽 에블린",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다는 이유에서다.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잔을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고 하는 진공묘유 철학과도 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영화는 구태여 불가를 언급하며 정색하는 대신 귀엽게 베이글을 내놓는다. 영화의 전체 태도가 이렇게 쿨하고 짓궂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음에 절망하지만 이뤘을 수도 있었을 그 어떤 영광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가족이 에블린에게 있다. 모든 토핑을 올린 메뉴인 "에브리씽 베이글"에서 토핑을 빼버리면 그야말로 베이글, 즉 "0" 밖에 남지 않게 되어버린다. 몇 개의 멀티버스를 체험한 에블린은 문득 자신의 인생이 0 뿐인 베이글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면 가족이라는 토핑을 잔뜩 얹은 에브리씽 베이글이었고, 에블린이 이룬 "가족"이라는 개념의 안티테제인 (가족이 아닌 다른 것으로 에브리씽 베이글을 이룬 알파 에블린이 만든 괴물인) 조부 투파키는 그 에브리씽 베이글을 플레인 베이글로 만들려는 허무주의의 화신이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인 셈이다.


멀티버스를 상상하는 건 두고 온 선택지에 대한 미련이고 미련은 현재 삶에 대한 세금이다. 에블린은 영수증을 정리해 세금을 털어내고, 동시에 자신의 인생 궤적을 중간 정산하며 두고 온 것들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는 중이다. 부모가 강요한 선택을 원망하지만 돌아보면 그게 맞았고, 배우자는 한심하다가도 섹시하고 하루에도 수만 번은 다른 사람 같으며, 자식은 가끔 서로 너죽고 나죽자 웬수덩어리인데 그거 사실 내가 만든 거고. 그러니까 이 영화는 삶의 선택과 후회에 대한, 그리고 가족에 대한 우주적 우화에 다름 아니다.


가족이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어쩌면 너무 가깝고 보편적이어서 사소하게 여길 수도 있는 고민, 그 사소함을 새삼 논하기 위해 돌아오는 길이 너무 거창하지 않느냐라고 묻는다면, 더 거창하고 더 호들갑스러워도 좋다고 답하겠다. 목적지 까지의 최단시간 코스도 좋지만 영화라는 건 절경을 보며 돌아가는 우회로다. 가족에 대해서라는, 삶에 있어서 가장 자주 그리고 평생을 해야하는 질문, 어차피 정답은 없는 딜레마에 대해 답하는 방식이라면 그 접근로는 다양할 수록 좋다. 이 영화는 그 돌아서 가는 미학을 안다.


90년대 MTV와 웨스 앤더슨 사이 쯤 있는 듯한 미술, 장르의 벽을 찢는 오마주와 패러디, 온갖 상징과 은유와 복선 시끌벅적한 미장센들이 오직 중심 주제의 장악력 아래에서만 까분다. 단지 기교를 뽐내기 위해 아무 때나 끼어드는 게 아니라, 결국 말하려는 바를 위한 수사로서 충실하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결코 과하지 않다. 그게 바로 "화법"이고 곧 작가의 개성이다. 감독 대니얼스 콤비는 2014년작 단편 [Interesting Ball]에서 황당무계한 해프닝들의 나열을 우주의 추상성과 나란히 배치하는 개떡같은 발상을 선 보인 바 있다. 단편의 심플한 아이디어를 장편으로 확장한 사례에서 이렇게나 드라마틱한 환골탈태가 또 있었던가.


원래는 성룡 주연의 기획이었다지. 양자경 같은 훌륭한 배우가 긴 타향살이 설움을 뚫고 드디어 인생 역작 하나를 만났는데도, 세대가 세대인지라 성룡 버전의 이 영화는 어땠을지도 궁금한 게 사실이고 더 추해지기 전에 마지막 걸작 하나 남겼더라면 좋았겠다는 애증 섞인 미련이 남는다. 멀티버스 어딘가에는 성룡이 주연한 버전도 있겠지.






연출 대니얼 콴, 대니얼 샤이너트
각본 대니얼 콴, 대니얼 샤이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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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 장르 화법으로 형이상학을 논한 우수 사례
[왓치맨] - 모든 시간대가 중첩된 영역에 존재하는 절대자의 허무주의
[스콧 필그림 vs 월드] - 보편적인 정서를 과장된 톤으로
[마미 마켓] - 소재 면에서



덧글

  • 포스21 2022/10/30 00:49 #

    이 영화 별 관심 없었느데 평이 전부 좋군요. 한번 봐야겠습니다.
  • 멧가비 2022/11/01 02:24 #

    마스터피스입니다
  • 잠본이 2022/11/01 11:22 #

    스틸만 보니 주인공 남편으로 나온 전직 쇼트라운드(...) 씨가 묘하게 성룡 닮은 얼굴로 늙었더군요. 세월이란...
  • 멧가비 2022/11/01 14:27 #

    그 얼굴로 성룡 액션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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