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데블 Daredevil 시즌1 (2015) by 멧가비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놀랄 지점들이 있는 드라마였다. TV 송출을 통한 순차 방영이 아닌 영화처럼 OTT로 전편이 한 턴에 공개된 드라마라는 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전에 없던 진한 하드보일드 정서 등이 그러했다. 게다가 작품이 진행되는 톤 자체도 너무 달랐지. 20화가 넘어가는 분량이 자극적인 플롯과 빠른 전개로 꽉 차 있는데 또 그 와중에 버릴 에피소드도 분명히 존재했던 기존의 미국 드라마들과는 너무 다른, 10여 화의 짧은 분량에 전개도 느린 것 같은데 이상하게 몰입감 좋고, 슈퍼히어로 드라마라고 해놓고 인물들이 말만 하다가 끝나는 에피소드도 있는데 그게 왠지 "버릴 에피소드"는 아니고. 여러모로 전에 없던 느낌, 뭔가 더 "정성스럽고 질 좋은"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처음 준 작품.


영화와는 다른 드라마의 강점 혹은 특성을 하나 말하자면 바로 캐릭터 구성이다. 단적으로 말해 장기 방영 드라마는 캐릭터에 정 들어서 계속 보게 되는 맛이 있는 건데, 이 드라마는 그런 점을 극단적으로 잘 활용한 경우. 그러니까 이 시즌1은, 헬스키친이라는 지역의 상상을 초월하는 무법성과 그 안에서 충돌하는 맷 머독과 윌슨 피스크 두 사람을 온전히 소개하는 데에만 거의 한 시즌을 투자하고 있다는 거다.


조금 자세하게 말하자면, 본작의 가장 훌륭한 점은 데어데블이라는 얼터 에고 이전에 존재하는 주인공 맷 머독의 본래 직업, 변호사로서의 직무에 대한 서사를 등한시 하지 않음으로써 영웅이라는 가면 아래에 존재하는 사람 그 자체에 먼저 주목한다는 점이다. 이야기의 발단부터가 맷과 포기 두 친구이 변호사 사무실 개업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으며 주인공 3인방의 마지막 한 축인 캐런 페이지와는 변호사와 살인 사건 용의자 관계로 첫 인연을 시작한다. 지방 검사와의 기싸움으로 시작해 법정에서의 드라마틱한 싸움 또한 이 드라마는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는데, 이는 토니 스타크의 과학자로서의 열정을 묘사하는 데에 더 공을 들였던 [아이언맨],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으로부터 시작한 [퍼스트 어벤저] 등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작품들이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들의 그 연장선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를 위한 각본이며 대사며 연출이며 모든 방향에서 수준급, 그러니 인물들이 마주 보면서 대사만 주고 받다가 끝나는 회차도 재미있을 수 밖에. 심지어 19화는 맷과 포기의 우정이 시작된 순간과 끝나는 순간만을 천천히 진득하게 그러나 심정적으로 매우 깊숙하게 묘사하는 것으로만 채워진다. 슈퍼히어로 코믹스를 실사화 한 드라마를 만들면서 누가 이런 대담한 짓을 하냐고.


주인공 맷 머독-데어데블은 MCU 최초로 거리의 범죄와 싸우는 가면 쓴 자경단 캐릭터, 그에 걸맞다면 걸맞게 처절할 정도로 부러지고 무너지는 영웅이다. 예컨대 CW의 DC 히어로물 등과 같이 적당한 퀄리티에 자극적인 전개가 세일즈 포인트인 작품들은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 라인과는 별개로 보통 1화 완결 에피소드의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그래서 주인공들은 매 회 마다 컨디션이 항상 리셋되곤 하는데, 이 데어데블은 작은 상처들이 사라지지 않고 데미지가 누적되는 게 눈에 보인다. 더 처절한 것은, 하이테크 수트를 입은 천재 과학자라던가 마법 망치 들고 날아다니는 외계인이 존재하는 세계관인데 그런 종류의 초월적인 감시자들의 눈에 띄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기에, 그저 나무 막대기 두 개 든 변호사가 혼자 외롭게 싸울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런가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그의 숙적인 윌슨 피스크-킹핀의 서사도 동시에 진행된다. 로키의 침공과 어벤저스의 분투, 그 여파로 폐허가 된 헬스키친에는 재개발 붐이 일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흑막 뒤의 재건축 업자 킹핀. 맷과 마찬가지로 결핍이 있는 유년기에, 초보 자경단인 데어데블처럼 킹핀 역시도 뉴욕 뒷세계의 갱 두목에서 그 이상의 야망을 실현하려는 이른바 "슈퍼 빌런"으로 이제 막 성장하는 인물이다. 이제 개업한 영웅과 악당, 자신의 고향을 지키려는 자와 가지려는 자 두 사람이 서로에게 치명상을 계속 안기면서도 또한 서로에게 성장의 디딤돌이 되어주는 기묘한 시너지 또한 작품의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슈퍼히어로 드라마"라는 카테고리의 기존 평균값을 말도 안 되게 상회해버리는 걸작 시리즈물의 탄생이라는 결과로 수렴된다.




연출 필 에이브럼, 애덤 케인, 켄 지로티, 패런 블랙번 外
각본 드루 고다드 外
원안 스탠 리, 빌 에버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