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공주 (2014) by 멧가비

수술 후 진통제 약빨이 떨어지는 순간이 있다. 조금 전 까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의식하지 못한 새에 언제 이렇게 아파진거지? 하며 뒤늦게 통증을 자각한다.



영화는 의외로 잔잔하고 덤덤하게 소녀 한공주의 일상과 희망에 집중한다. 과거에 어떤 끔찍한 일을 당했건, 지금의 공주는 그냥 살고 싶을 뿐이다. 살려고 수영을 배우는 것 처럼, 그저 숨을 쉬고 싶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왠지 저 앞에 희망이 놓여져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영화는 진통제를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다. 분노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어서 눈을 돌리고 외면하던 현실 세계의 끔찍한 비극보다 더한 것이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진다. 아프고 괴롭다.


공주는 아무 것도 모르는 강아지처럼 불안한 눈을 꿈뻑인다. 잘못한 것도 없고 뭔가를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말도 안 되는 책임을 져아하는 길에 놓여버린 현실이 이해되지 않는 눈빛이다. 저항할 힘 없이 파도가 치는대로 쓸려 다니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는 거지. 그러다 차마 힘 없이 한 마디 던질 뿐이다. '사과를 받으면서도 왜 도망 다녀야 하느냐'고.


친구 은희는 공주에게 말한다. '그 쪽으로 가봤자 길 없다'고. 그러나 어느 쪽으로 갔어도 공주에게 길은 없었다. 공주는 단 하나 바라던 수영 조차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덧글

  • 코스모 2014/04/22 14:53 #

    엄청 분개하면서 적으실 줄 알았는데 뭐가 멧가비 님을 차분하게 만든 걸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얘기 들려 달랄 걸 그랬나 봐요
    역시 뭐든 생중계가 제맛인데

    수단과 결과는 과연 무엇이 옳은가
    햄릿같이 진지한 고민을 해봅니당 또르르..
  • 멧가비 2014/04/22 15:00 #

    뭐겠어요. 숙취 때문이죠.

    는 농담이고, 영화의 기반이 된 사건 때문에 화가 나지, 영화 자체에는 되려 화도 낼 수 없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요. 엄청난 스트레스의 끝은 결국 가라앉는 거더군요. 영화 보고나서 너무 가라앉아서 담배만 계속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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