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탐구 03 -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 by 멧가비

드래곤볼 세계관엔 불교가 존재한다. 크리링이 다림사의 승려 출신이므로 불교의 존재 여부는 확신할 수 있다. 또한 '신선'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는 점에선 도교 사상과 그 이미지도 일부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드래곤볼'에선 죽은 사람들은 주로 머리 위에 고리(halo)가 떠 있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드래곤볼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닥터 슬럼프'에선 이마에 삼각형 띠를 두른 귀신들이 나온 바 있다. 이는 일본 특유의 장례법과 관련된 물건이니, 일본의 민속 신앙도 포함된다 하겠다. 심지어 점쟁이 바바 할망구는 생김새나 사용하는 마법 등으로 봐선 유럽 흑마술 계열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이 많은 종교와 신앙들이 뒤섞인 세계관임에도 정작 지구의 신은 어딘가 이상하고 허술하다. 드래곤볼 세계관의 신에 대해서 말해보자.


우선 이 지구의 신(이하 '신님')은 염라대왕보다 지위가 낮아 굽신거리며 눈치보기에 바쁘다. 작중에서 염라대왕의 호통에 진땀을 빼는 모습이 묘사되기도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신님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조물주' 등의 거창한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 존재하며 만물을 창조하는 조물주로서의 신이 아니라,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파출소장처럼 '지구 부서에 배치되어 근무하는, 신이라는 이름의 관리자'에 가깝다.


심지어 하는 일도 별로 없다. 신계에서 '하계를 내려다본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하계의 인간들의 삶에 관여하진 않을 뿐더러 하계의 인간들도 신님의 존재를 모르고 있는 듯 하다. 인간의 길흉화복, 천기(天紀) 등과는 애초에 무관하다.


그것은 신님을 대상으로 한 신앙과 종교의 부재를 말한다. 신님의 존재 의미는 오로지 드래곤볼 하나 뿐인 거다. 그렇다면 신님은 '숭배'나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기복'의 대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기복의 대상 역시 신님 자체가 아니라 신님이 만든 일곱 개의 구슬이다. 신님이 만든 구슬을 모으면 신님의 보좌관이 만들고 신님이 숨을 불어넣은 신용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준다. 종교가 형성된다면 신님이 아니라 드래곤볼과 신용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애니미즘 성격의 종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쉽게 생각하면 한국의 서낭당 나무나 보살집 정도와 비슷한 레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이점이라면 이쪽은 정말로 소원을 들어준 다는 점.


그나마 드래곤볼을 만드는 건 신으로서의 권능이 아닌, 나메크성인 중 용족으로서의 혈통에 따른 유전적 능력이다. 즉 신님 이전에 존재했던 선대의 신이 나메크인이 아니었더라면 드래곤볼도 없었을 것이며, 드래곤볼이라는 건 태고적부터 이 세계와 함께 존재한 고대의 물건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나메크성인으로서의 드래곤볼 제작-관리 능력이 아니라면 사실상 신으로서의 업무는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대 피콜로전 이후에 신이 오공을 자신의 후임으로 삼으려 했던 걸 생각하면 싸우는 거 말고 별다른 재주가 없는 놈도 신이 될 수 있나보다. 그럼 대체 이 전의 신들은 뭘 했길래 신이라 불리웠단 말인가. 일반적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신'의 이미지는 오히려 작중의 '계왕'에 더 가깝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전 우주의 영혼이 모이는 저승이니만큼 염라대왕이 지구의 신보다 지위가 높은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 염라대왕의 위에는 계왕들이 있고 그 계왕들의 위에는 대계왕들이 있으며 또 그 위에는 계왕신들이 존재한다. 무슨..신이라는 것들이 공무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가만보면 계왕도 그렇고 계왕신들도 그렇고...그저 '내려다보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작중에서 묘사되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실질적으로 우주의 흥망을 좌우하는 건 '일개' 사이야인들이며 우주에서 가장 높다고 하는 계왕신은 필멸자인 그들의 눈치나 봐야하는 신세다.


우주의 최고 위에 있다는 계왕신이 이 정도니, 지구의 신이라는 건 정말 엄청나게 초라해 보인다. 실제로 차기 신인 덴데는, 계왕 이상 간부급들의 회의나 허가같은 절차 없이 그냥 지구 애들 몇 명이 결정하고는 오공이 직접 데려다가 취임시켰다. 이건 뭐 동네 동사무소 미관말직도 아니고 명색이 지구의 신을 사이야인이 데려다 앉히다니.
(지구의 것보다 더 강한 오리지널 드래곤볼을 만들고 신 후보자를 '출산'한 나메크 성의 노인네는 신도 아니고 그냥 마을 '장로'다! 다른 행성 장로가 낳은 아이가 지구에 와서 신이 되다니, 말만 들으면 식민지가 아닌가 싶다.)


한 가지 반전. 예전에 거북선인이 파괴한 달을 신이 복구했다는 언급이 있던 것으로 봐선, 파괴된 행성을 복구할 정도의 천체 관리 능력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신이 직접 복구했다는 건지 아니면 윗선에 건의를 올린 건지도 불분명하며, 신이 했다고 해도 그게 신 스스로의 능력인지 아니면 윗선에게서 부여받은 권능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어쨌거나 신이라는 게 조또 무능하고 하는 일도 없고 그냥 이름만 신일 뿐이라는 결론. 게다가 신의 존재를 아는 이도 없으니, 신은 신인데 '자칭 신'인 거지. 존나 허접한 노인네였구만.


여담이지만...덴데는 매일 매일이 존나 가시방석일 거다. 선대의 선대의 선대 훨씬 전의 선대 때 부터 보좌관이었다던 미스터 포포야 뭐 어쨌거나 일단 직급 상으로는 부하 직원이니 그렇다 쳐도, 명예 퇴직한 바로 전임자 피콜로(신콜로?)가 늘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게 문제다. 새로 부임한 관리자 사무실에 전임자가 일도 없이 맨날 죽치고 앉아있는 꼴이다. 아 생각만해도 졸라 불편하다.


덧글

  • genO 2014/05/03 23:06 #

    그러니까...
    계왕신보다 짱 쎈 악당들도 죽으면 염라대왕 앞에 가는거죠?...

    음....;;;;아...생각하면 안돼...
  • 멧가비 2014/05/05 21:57 #

    염라대왕이 죽으면 어찌되나 궁금해지네요.
  • 2014/05/24 14:0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4/05/24 15: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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