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워즈 6부작 전체를 봤을 때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아나킨 스카이워커, 다스 베이더다.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 채 태어나자 마자 노예 신세였는데, 오매불망 꿈 꿔오던 제다이가 되서 신세 좀 바꿔볼라믄 유일한 피붙이인 엄마랑 생이별을 해야 된댄다. 꾹 참고 참아 반(半) 제다이가 되서 고향에 돌아가 겨우 겨우 어떻게 엄마 임종만 지켜봤다. 피 끓는 청춘에 쌤들 눈 피해가며 돈 많은 연상녀 후려 애까지 가졌는데 그만 의처증이 도져서 부부싸움끝에 집사람 눈을 감겨 버렸고, 홧김에 하늘같은 스승한테 대들었다가 호되게 체벌 받아서 전신이 기계로 개조당한 것도 모자라, 어렵게 만난 아들내미는 그나마 있는 의수를 덜렁 잘라내질 않나, 박봉에 고생해가며 상사로 모셨던 노인네는 내 아들을 못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에라 모르겠다, 태어나서 처음 사람구실 하자 싶어서 아들을 위해 장렬히 전사한 거다.
아나킨을 중심으로 놓고 대강 얼개만 풀어본 6부작 전체의 스토리. 이쯤되면 아나킨은 단순히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전 은하계에서 최고로 짠한 남자다.
하지만 시각을 달리해서 보자. 아나킨이 불쌍해? 지 할거 다 하고 아들 딸 낳아놓고 죽은 희대의 한량이 불쌍해? 그럼.....그럼 그 불쌍한 놈 때문에 아무 것도 못해보고 순직한 불쌍한 오선생은 어쩌라고?
자, 스타워즈 최고의 '멘토'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그 오선생의 일대기를 살펴보자.
출생은 아주 좋았다. 듣기론 나름 방귀 좀 뀌는 귀족 가문의 후손이라고 한다.
핏덩이 때부터 제다이 사원에서 살기 시작해 나름 제다이의 정석 코스를 밟았다. 훈련병 말호봉 때 잘못하면 자대 배치를 못받아 사원 머슴이 될 위기도 잠깐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면 어쨌거나 누구 못지않은 FM 코스를 밟은 정통 제다이였다. '제다이 정석'이라는 책을 집필한다면 오선생의 감수가 반드시 있어야할 정도로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반듯한 제다이가 바로 그였단 말이다. (물론 철없을 땐 꽤 날뛰었다는 말도 있지만)
파다완 시절만 해도 그의 앞엔 꽤나 창창한 탄탄대로의 출세길이 있을 것만 같았다. 약간 과격하고 히피스러운 스승 밑에서 자라긴 했지만 신통하게도 우리 오군은 그런 스승 밑에서도 반듯하게 자라주었다. 오히려 제자란 놈이 너무 고지식해 빠져서 스승이 갑갑해하진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던 스승이 자기랑 비슷해 보였는지, 어딘가 그늘이 잔뜩 진 꼬맹이 녀석을 달고 나타나서 제자로 삼겠다며, 아직 스승의 품이 그리운 자기는 덜렁 조기졸업 시켜버리는 거다.
그래놓고는 남긴다는 유언이, 황야에서 폭주족 노릇을 하던 그 꼬맹이를 제자로 삼으라는 거다. 이런, 시작부터 꼬인다. 맘대로 제자를 고르지도 못하게 된거다. 내심 요다옹께서 끝까지 반대해주길 바라......진 않았겠지만...........
그런데 이놈, 애가 심성은 착한데 출신이 할렘가인지라 하는 짓이 망나니다. 폭주족 버릇 못 버리고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질 않나, 하라고 준 임무엔 콧방귀 뀌고 사적인 감정 팍팍 넣어서 일을 꼬이게 만든다. FM적인 오선생 입장에선 가장 대하기 까다로운 타입인데 그게 하필 제자야.
그래도 어째저째해서 꾸역꾸역 잘 키워놨더니 이놈이 제법 사람 구실을 하는 것 같다. 스승이랍시고 고맙단 말도 할 줄 알고 꽤 실력도 있어서 공도 많이 세운다. 둘이 같이 참전해서 전쟁 영웅 소리도 듣고 다닌다. 이 정도면 배트맨, 로빈의 다이내믹 듀오가 부럽지 않은 거다. 그렇게 스승 체면 좀 살려준다.
.......싶었는데 아차, 이 새끼가 못 먹고 못 입고 자라서 그런지 욕심이 너무 많네. 선생이 보기엔 아직도 불안불안한 놈이 마스터 안 시켜줬다고 생떼거리를 쓴다. 최고 기관 대장님 직속 명령으로 원로회에 앉혔는데, 그 둘이 뭔가 커넥션이 있는 것도 같고, 그 대장 노인네부터가 뒤가 구린 냥반이고. 화가 난다. 자기는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해가며 꿰찬 자린데 이놈은 그냥 인맥 잘 만들어 낙하산 인사란 말인가.
그래 시발, 거기까진 좋다 이거야.
이 자식, 알고 보니까 스승 몰래 장가 들어서 와이프가 애까지 가졌네. 둘이 수상하다 했다. 붙어 다닐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결국 그 돈 많은 국회의원 연상녀랑 정분이 난거다. 아니 그런 일에 뚜껑 열릴 겨를이 없다. 이놈이 뭣땜에 삔또가 상했는지 선배 동기 후배 가릴 거 없이 사원 안에 있는 어린 제다이까지 싹 쓸어버리고는 잠수 탈려고 폼을 잡는 거다. 일단 쫓아간다.
열 받어서 다리 몽뎅이 싹 분질러 버렸다. 형제? 그래 형제였지. 사랑? 그래 사랑도 했어. 그럼 뭐하냐고. 이것 저것 다 가르치고 공들인 제자놈이 이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단 말이지. 아이쿠야, 그러는 와중에 구린내나는 의장 할배는 공화국을 냠냠해 잡수셨네 그려. 세상이 바뀐거다. 민주주의 정부는 이제 사요나라. 이제부텀은 제국의 시대란다. 제다이들은 다 잡아 없앨거랜다. 저들의 눈엔 이제 제다이가 우주의 안녕을 위협하는 빨갱이인거래.
어쩌냐. 귀족 출신 체면은 고사하고 일단 잠수부터 타야겠는 거지.
결국 그 이후 어찌어찌해서 그 양아치같던 제자놈이 낳아 놓고 잃어버린 아들내미를 다시 제자로 받았어. 쫌 키워보니까 지 애비랑은 싹이 다른 것 같네. 그래, 말년에 요놈 한 번 제대로 키우고 죽자. 그래야 보람도 있지. 오늘 내일하는 노년에 수업료 욕심은 부리지 말자. 업적 하나만 딱 굵직하게 남기자 씨바.
.....하다보니 이게 왠걸. 그 양아치같던 제자놈, 그니까 현 제자의 학부형이랑 재수없게 마주쳤다. 지 말로는 예전보다 뭐 졸라 짱 세졌다, 원은 완성됐다(원이 뭔데?) 어쩌고 저쩌고 혓바닥이 길다. 제 놈이 기운이 센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막 무섭게 생긴 갑옷같은 걸 입고 있는게, 보기에 좀 후달린다. 지금 당장 내가 늙고 지쳐서 힘이 없다. 안되겠다. 기껏 새로 키우는 제자 졸업이라도 시키려면 희생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 (기껏 따라온 놈이 백수건달같은 운전수랑 걸어 다니는 카펫 한 마리니...)어차피 지금 싸우면 내가 못이길 게 뻔하니께 마지막을 좀 간지나게 마무리 짓자. 뿅~
이후로도 우리 오선생은 포스의 영이 되어서 계속 잔소리 해 대 가며 결국 영 스카이워카를 잘 키워내긴 했다. 하지만 결국 졸업반 선생인 요다 옹이 업적 포인트는 다 가져갔다. 졸업장 건네 준 사람이 결국 졸업하고도 찾게 되는 선생이라더니 그런 꼴이군. 게다가 이놈, 지를 캐스팅해준 게 누군데 왜 아빠에 대해 숨겼냐고 다 지나간 일로 찌질대고 난리다. 그래도 지 애비보다 성격은 좋으니 참는다.
불쌍하도다, 측은하도다. 우리의 오비완, 제다이 오선생.
제자만 잘 만났더라면 앞서 말한대로 탄탄대로의 출세길을 걷다가 곱게 늙어서 제다이 역사에 이름 한 줄 잘 남기고 원로회 자리 지키다가 국립묘지에 묻혔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 지랄같은 성격의 꼬맹이놈만 제자로 안받고 다시 지 살던데로 강제 송환했었으면 충분히 가능했을 훈훈한 인생 시나리오다. 하지만 참 더럽게도 운명이 꼬여 그놈의 스카이워커 집안에 엮여 버린거다. 제대로 제자 한 번 못 키워보고 순직이다. 자기 인생 꼬이게 만든 스카이워커 놈들은 제다이 주제에 결혼도 하고 애도 쑥쑥 잘 낳아서 이 우주를 대표하는 뼈대있는 가문으로 남는다.
핵심은 그거다. 남자로서 즐길 것도 못 즐기고 씨도 못 뿌리고 그렇다고 기록될만한 큰 업적을........남기기야 했지. 남들이 안알아줘서 그렇지.
하여간 은하계에서 이렇게 더럽게 꼬인 인생이 또 있을까. 딱히 남 눈에 날 짓 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2008년 8월의 글
덧글
볼 때는 깨닺지 못했었습니다.
그와는 별도로 문장이 참으로 찰집니다. 건달 운전사와 걸어다니는 카펫 한마맄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