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 Jurassic World (2015) by 멧가비


오래 기다린 세 편의 영화 터미네이터, 매드맥스에 이어 쥬라기 공원의 후속작. 이 마저도 만족스럽다니. 올해는 영화운이 좋았다. 실망스러움 컸지만 좋은 점이 근소하게 많았다.


1편 '쥬라기 공원'과 이번 '쥬라기 월드'는 마치 '터미네이터' 1편과 2편의 관계와도 비슷하다. 끝내주는 호러로 시작한 첫 영화. 그리고 전작을 답습하지만 간지 터지는 액션으로 거듭난 후속작. 물론 터미네이터2처럼 쥬라기 월드가 전작을 넘어서거나 최소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라고 보긴 힘들다. 쥬라기공원 1편은 절대 못 넘어서지.


초반, 중반 까지는 클리셰 범벅에 스토리마저도 했던 얘기 반복이길래 또 추억팔이 시즌 상품이구나, 하면서 실망. 그렇지만 이 영화의 거의 모든 좋은 것들은 후반에 몰빵이더라. 



인간 얘기.

말 안 듣는 애새끼들 또 나오는구나 싶었는데 얘들이 은근히 액션, 개그 분량을 나눠먹더라.


상황 판단 못 하는 민폐 여주인공도 있네, 싶더니 영화 유일의 성장형 캐릭터라는 반전. 이론 밖에 없는 바지 경영인에서 최종 병기 소환사로 진화하는 거 존나 멋있다.


뭐든지 무기로 갖다 쓰려는 미친 군인 캐릭터는 재고의 여지가 없더라. 얘는 진짜 너무 구림. 갈등 구조를 간단하게 유발시키려는 용도 뿐인 알맹이 없는 NPC에 지나지 않는 듯. 알고보니 우박사가 더 나쁜 놈이라는 게 그나마 반전이라면 반전.




공룡 얘기.


스토리는 볼 것 없고 오로지 공룡판 어벤저스 뿐이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공룡이 더 이상 놀랍지 않은 세상이라는 자조적인 대사를 치면서도 스테레오 타입인 인간 캐릭터들 대신 끝까지 공룡으로 승부보는 근성이 더 대단해 보인다.


익룡 습격에서 이어지는 막판 싸움 액션 설계가 제대로다. 육해공의 적절한 조화. 어벤저스 1편의 원 테이크 장면 때의 카타르시스 이상이다. 어벤저스와 달리 이 쪽엔 추억이라는 밑밥이 깔려 있으니까.


영화 보는 내내, 아 티렉스 식상할까봐 4편에선 뺀 거라면 영화 만든 놈들 판단력 너무 떨어지는데, 하면서 실망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그렇게 소환될 줄이야. 무슨 최종 병기 등판하듯이 딱 나오는 장면에선 진짜 오줌 싸는 줄 알았다. 그치만 무슨 해탈한 구도자처럼 쿨하게 퇴장하는 건 너무 대놓고 간지라서 약간 깬다. 그렇다고 거기서 갑자기 블루를 잡아먹는 것도 이상하니까, 차라리 모사가 렉시 물고 렉시가 인돔이 물어서 줄줄이 물에 끌려들어가는 건 어땠을까 싶다. 얘가 1편의 그 렉시라던데, 어차피 조금 있으면 늙어서 죽을텐데 그런 최후도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티렉스는 본의 아니게 그 동안 전 시리즈에서 선역 아닌 선역이었지만, 랩터들은 이게 최초인 듯. 게다가 그 보일듯 말듯한 미묘한 감정 표현. 적일 땐 답 안 나오는 미친 놈들이 아군이 되면 든든하다,는 클리셰를 랩터한테 써먹은 건 의외의 부분이다. 렉시와 블루의 태그팀이 마치 헐크와 울버린의 팀플을 보는 듯 했다.


인도미누스는 너무 투명드래곤이라 되려 매력이 떨어진다. 무슨 게임 캐릭터 커스터마이징하듯이 그렇게 이것 저것 다 갖다 붙이고 섞을 수 있는 거면 아예 날개랑 뿔 달아서 진짜 드래곤을 만들지 그랬나 싶다. 차라리 2015년작 킹콩처럼 '원치 않는 세상에 끌려온 분노가 폭발한다'는 감정 묘사를 보탰으면 어땠을까 싶다. 어차피 이 영화에서 공룡들이 거의 다 반은 사람이더만. 그 정도 감정 표현은 해도 됐을 것 같은데.


전작들보다 익룡을 많이 보여주고 또 잘 써먹은 거 좋았다. 3편의 걷는 익룡은 생각도 하기 싫다.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공룡들이 다 너무 사람같아서 약간 징그러운 건 있더라. 말만 안 한다 뿐이지, 랩터 훈련 시켜서 몇 세대만 거치면 관객들한테 찌라시도 돌릴 수 있겠던데? 뭐 아무튼 공룡을 그렇게 친근하게 묘사했으니 피규어는 엄청 팔릴듯. 하스브로 노났네.



기타 등등


공룡도 공룡이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현실 공포는 자본가와 과학자의 무책임함과 비윤리성이다. 마스라니 회장이랑 우 박사가 서로 니가 개새끼라고 책임 떠넘기면서 싸우는 장면이 제일 임팩트 크다. 이건 공룡 없는 현실에서도 벌어지는 일이거든.


관객한테 공개하지도 않을 랩터나 인돔이를 굳이 만들어서 관리하는는 것만 봐도 경영 구조가 얼마나 허술한지, 경영인이나 자본가가 얼마나 안일하고 무책임한지를 알 수 있다. 회장이란 새끼가 과학으로 장난질 치라면서 주문한 내용이 '쿨하게' 한 마디라니, 이거 미친놈 아닌가.


군인도 미친놈인 게, 진짜 그 천문학적인 금액을 들여서 공룡을 전장에 투입하는 게 효율이 있을 거라고 본 건가. 고대 전쟁터에서 코끼리가 왜 퇴출 됐는지를 생각하면 답 나올텐데. 나름 군사 전략가인 척 하는 놈이지만 사실 그냥 생체병기 덕후였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봐도 위험해보이는 자이로스피어 운용 방식이나 마스라니 사후 총 책임 권한 승계 방식 등 이야기의 허술한 부분이 너무 많지만, 시발 어차피 공룡 나오는 영화에서 공룡을 그렇게 적재 적소에 잘 써먹었으니 다른 걸로 태클 걸 마음이 안 든다.


조류 공룡원이라니. '어벤저스'의 '첼로리스트' 이후로 이렇게 무시받는 느낌 드는 번역은 또 오랜만이다.



연출 콜린 트레버로
각본 콜린 트레버로, 데릭 코널리
원안 마이클 크라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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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nenga 2015/07/07 19:53 #

    말 안듣는 얘들 캐릭터는 다른 영화에 나오는 발암성 캐릭터에 비하면 괜찮은 편이죠
    1편은 전반적으로 시키는대로 하는 편이었고 여자애도 처음에만 비명 지르다가 나중에 잘 도망치고
    2편은 말 안듣고 따라가것 빼고는(이게 크지만)...마지막에 한 방도 있고
    3편에서는 박사까지 구해주고



  • 멧가비 2015/07/07 22:31 #

    본문의 애들 얘기는 전작들을 언급한 게 아니라 전반적인 클리셰 그 자체에 대한 거였습니다.

    근데 1편의 그 애들은 진짜 싫어요. 1편의 유일한 오점은 공룡이 걔들을 깨물어 죽이지 않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 nenga 2015/07/08 14:12 #

    저는 3편 여주가 좀...

    4편 여주도 3편 같은가 했더니...
    인간 캐릭터 중에는 제일 맘에 드네요, 필모도 좀 재미있고...
  • 멧가비 2015/07/08 18:35 #

    캐이트 브루스터, 안 넣는 게 나았을 캐릭터를 굳이 넣은 느낌이죠.

    새라 코너 포지션을 넘겨 주려던 것 같은데, 그나마 4편에서는 임신했다고 별로 하는 것도 없고.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뭔가 모를 느낌이 맘에 드는 배우라서 좀 눈여겨 보게 되는 게 있습니다.
  • 사장님 2015/07/07 22:33 # 삭제

    뻔해도 재밌던 작품이죠.
    1편의 그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부터 반이상 먹고 들어간다고 봅니다.

    제 생각인데, 울타리를 2겹으로 할 생각은 못하나요. 돈이 많이 들어서그런가. 주타이쿤 할때도 호랑이가 자꾸 탈출해서 2겹으로 했었었는데...
  • 멧가비 2015/07/08 18:37 #

    안전불감증이 사고로 이어지는게 시리즈 전통이었잖아요. 울타리 두겹 칠 생각을 할 수 있는 놈들이었으면 울타리가 한겹이었어도 다른 뭔가로 대비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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