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보이지 않는 위험 The Phantom Menace (1999) by 멧가비


이 영화는 어쩌다 '안 봐도 무방한 영화'로 낙인이 찍혀버렸을까.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창세기가 아무리 재미없어도 성경의 첫 장인 것처럼, 서사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니만큼 세계관 자체에 애정이 있는 사람에게라면 단순히 재미로 평가받을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의 예고편에 뻑가서 클래식을 다시 제대로 감상하고 본격적으로 스타워즈를 즐기게 됐던 경험도 있다.


사실 그렇게 재미없지도 않다. 영화를 못 만들었다는 게 곧 재미없다는 뜻은 아니다. 개똥같이 못 만든 영화도 황당하게 재밌는 경우가 있고 기깔나게 만든 웰메이드 영화도 지루할 수 있다. 퀄리티가 곧 재미는 아니다. 포드 레이싱 등 길기만 한 쓰레기를 포함해 불필요한 사족들이 많이 달려있긴 하지만 그 외에는 재미있는 순간들이 있다. 전체적인 퀄리티가 낮다고 해서 재미있는 부분들 모두를 무시할 수는 없지. 게다가 구리기로 따지면 이 영화도 2편한테 안 된다. 2편에 비하면 이 영화는 구로자와 아키라지.


도입부에서 처음 광선검 두 자루가 딱 뽑아질 때의 그 흥분감이 아직도 기억난다. 게다가 나탈리 포트만 얼굴을 기억을 못 했기 때문에 그 카게무샤 반전도 꽤 재미있었다.


광선검 대결은 여섯 편을 통틀어 가장 훌륭하다. 동작이나 동선의 설계도 러시아 발레처럼 역동적이면서 우아하다. 게다가 클래식과는 다르게 동작의 화려함에 치중하고 조금 더 적극적인 포스 기술을 활용하는 등 현대적인 제다이의 무브먼트는 이런 것이다, 라는 일종의 기조가 이 영화에서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클래식에선 그냥 아무나 입고 다니던 삼베 적삼이 제다이들의 코스춤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 영화부터 아니었나.


게다가 다스 몰의 그 압도적인 멋 역시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서 최고다. 다스 베이더의 묵직함과는 다른 종류의 멋짐. 베이더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어둠으로 삼켜버릴 것 같은 까마득한 어둠이었다면 몰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다 찢어버릴 것 같은 광기의 어둠이라는 느낌이다. 체급이나 유파로만 따지자면 마치 최배달과 이소룡의 차이 정도?


팬덤 사이에서 혐오를 넘어 거의 증오의 대상으로까지 여겨지는 자자의 존재는, 난 그 정도로 싫지는 않았다. 콰이곤이나 오비완이나 둘 다 워낙에 점잖은 냥반들이시라, 옆에서 깝죽대는 놈이 하나 있으니 균형이 조금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다만 존만한 세불바한테 얻어 터지는 모습이 좀 등신같긴 했다. 자자가 싫었다기 보다는 건간족 자체가 불필요한 것 같다.


꼬마 아나킨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연기는 그지같이 못 하지만 하는 짓이 귀엽다. 실망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바람처럼 그렇게 일찌감치 마왕의 재목인 척 할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처음에는 비범한 모습만 보여주면서 되려 성격은 착하고 맑은게 낫지. 그래야 나중의 흑화도 더 드라마틱한 거고. 그런데 그 비범함을 머더뻑킹 몇 번씩이나 보여주려는 루카스 영감탱이의 호들갑 때문에 영화에 사족이 많이 달리긴 했다.


클라이막스 전투 시퀀스는 조잡하다. 잔챙이들 다 빼고 딱 큰 거 두 판만 보여줬어도 좋았을 거다. 광선검전이랑 공중전 두 개만. 배틀 드로이드들 무슨 수수깡처럼 픽픽 쓰러지는 걸 영화 내내 보여줘놓고선 막판에 대가리수만 늘려서 건간족이랑 또 붙여놓으면 그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좀 이해가 안 되고, 무역연합 총독 잡는 건 공중전이랑 어떻게든 연결 시켰어도 됐을 것 같다. 아나킨의 비범함을 보여주는 건 포드 레이싱이든 공중전이든 하나만 했으면 딱 좋았을 거다.


되려 싫었던 건 요다. 클래식의 요다는 뭔가 사연 많은 은거 노인처럼 품위가 있었다. 명언도 명언이지만 그 보다는 그 미묘하게 동양인처럼 생긴 얼굴에서 오는 느낌이었을텐데, 이 영화의 요다는 독 있는 양서류처럼 생겼다.


포드 레이싱의 유일한 좋은 점은 온갖 띨빵하게 생긴 외계인들이 잔뜩 나온다는 거다. 하지만 반대로, 이 영화와 대구를 이루는 4에선 그 짧은 칸디나 바 장면 하나만으로도 인상깊은 외계인 캐리커처들을 꽤 많이 남겼는데, 여기선 그 긴 레이싱 시퀀스를 통틀어 세불바 하나 기억난다는 점이 영화의 퀄리티 차이를 단적으로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도 제다이를 죽일 수 없다'는 아나킨의 말이 참 뭣같은 복선이다. 쌔끼...말이나 못 하면...



좋은 것들
리암 니슨, 나탈리 포트만, 해저 물고기들, 다스 몰, 드로이데카

싫은 것들
포드 레이싱, 누비안, 요다, 등신같은 배틀 드로이드


덧글

  • 사장님 2015/10/19 22:39 # 삭제

    배틀드로이드를 만들지 말고, 그 돈으로 드로이데카만 찍어냈으면 어떨까요.

    이번엔 옥수수깡처럼 클론들이 쓸려나가고 '아무도 드로이데카를 막을 수 없다'가 되었을지도..
  • 멧가비 2015/10/19 22:50 #

    영화에선 언급되지 않으니 별 의미 없긴 하지만, 드로이데카 한대 만들 단가로 배틀 드로이드 200대를 찍어낼 수 있다는 설정이 있더라고요. 게다가 가끔 에너지 필드가 없는 개체도 나온 걸로 봐선 전력 문제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 데벡 2015/10/19 23:41 #

    저도 이 영화 나쁘지 않게 봅니다. 정말로 위험이 보이지 않는 그 안일하고 평화로워빠진 분위기가 좋아요. 2편도 사실 스토리는 중요한 함의가 있는데 연출이 심각하게 재미없다는 게 문제였죠.
  • 닛코 2015/10/21 00:35 #

    자자는 역할이 조금만 더 잘 주어졌어도 괜찮았을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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