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Star Wars : The Force Awakens (2015) by 멧가비



우선 실망스러운 점부터 까고 넘어가자.


영화는 내내 에피소드4의 플롯을 거의 완벽히 반복하고 있다. 카일로 렌 등장 씬, 한-카일로 씬, 밀레니엄 팰콘 호 출격 씬은 그림 때깔만 좋지 사실 다 이미 본 장면들의 반복이다. 스타킬러 붕괴 씬에선 헛웃음이 나온다. 제국군아 또 당하냐.


중요한 데이터를 지닌 드로이드를 추격하는 제국군과, 지켜주려는 주인공 일행의 모험, 이라는 기본적인 구조 자체가 똑같다.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레이와 핀은 루크를 베이스로 깔고 아나킨과 한을 약간 섞어서 둘로 나눈 캐릭터다. 레이는 아예 입은 옷조차 루크가 처음 입었던 옷의 여성 버전일 뿐이다. 기껏 못 보던 새 얼굴들인데 캐릭터는 낯익다. 별로 유명하지 않은 어린 배우들을 기용했길래, 디즈니가 이 시리즈를 멀리 보는구나, 싶었는데 이래갖고선 멀리 얼마나 가겠는가.


최근 나온 터미네이터쥬라기 공원 후속작들과 근본적으로는 같은 개념이다. 클래식에 묶여서 앞으로 나아가질 못 한다. 프리퀄보다는 클래식의 낡은 느낌을 좋아하던 편이어서 그 화면 때깔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이렇게 클래식 느낌만 똑같이 내는 것으로 만족해야되나 싶은 생각은 든다.


칸티나 주점을 연상시키는 배경이라든지 홀로그램 체스, 쓰레기 압축기 드립 등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기자기한 부분들은 사실 재밌는 건데, 영화 자체가 했던 얘기 또 하는 거라 도매금으로 묶여버린다. 


동어반복은 그렇다 쳐도 플롯상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일이 지나치게 우연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레이는 우연히 비비를 만나 구해주고, 비비를 구하려던 핀은 우연히 레이를 만나고, 둘은 우연히 자쿠에 있던 밀레니엄 팰콘 호를 타는데 또 우연히 한과 추이를 만난다. 그런데 마침 또 레이가 하필 엄청난 재능을 가진 포스 센서티브였던 거다. 우주가 돕고 있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어쩌면 레이는 정말 포스가 함께하고 있는 걸까.





물론 간혹 허를 찌르는 의외의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다스 베이더 완성본의 카피인 줄 알았던 카일로 렌은 알고보니 에피소드 2쯤의 아나킨을 한 미완성 본이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지랄거려서 좀 더 병신같아 보인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겠지. 존나 하나도 안 멋있다는 점에서 허를 찔린 기분이다. 레이아와 한의 대화 중 '제 할애비와 똑같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찌질이 시절의 아나킨을 레이아는 어떻게 알고있단 말인가!

아무튼 그건 그냥 웃긴 거지만 진짜 좋은 부분들도 있다.



안전빵으로 가는 와중에도 JJ만의 야심이랄까, 아무튼 전작들과의 차별화를 나름대로 추구하는 점도 많이 보이는데,


우선 스톰트루퍼들이 더 이상 멍청하지 않다. 문에 머리를 찧는 멍청이들은 더 이상 없다. 심지어 전기 톤파를 들고 간지나게 싸우는 일반 보병까지 등장한다! 대신 크롬 에디션 장교가 멍청하지만.


전투 장면들도 좋다. 야외 촬영의 비중이 상당히 큰데, 덕분에 현장감이 대단하다. 그리고 보병 전투와 공중전이 드디어 한 프레임 안에서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게 됐다. 더 이상 각자의 리그가 아닌 거다. 카메라 워크가 특히 좋았다.

상관 없는 얘기지만, 초반의 양민 학살 씬은 어쩐지 느낌이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미래 전투 회상이나 스타쉽 트루퍼스와 흡사한 느낌이 든다.


화면을 채워내는 방식이 제국의 역습, 제다이의 귀환과 다르고 루카스의 전통적인 방식과도 크게 다르다. 뭣보다 화면 공간을 휑하니 비워두질 않고 나름대로 알차게 채운다. 프리퀄 3부작에서의 프레임 공간 낭비를 생각하면 이 쪽은 정말 (기술적으로)잘 만든 영화다.


가장 좋았던 건 포스 사용을 묘사하는 방식이다. 포스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루카스 영감탱이보다도 포스의 개념을 더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마인드 트릭 배틀이나 레이가 포스에 각성하는 장면 등은 일본 만화를 연상시킬 만큼 직관적이어서 알기 쉬우면서도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괄목할 만할 정도로 수준이 올라간 비주얼 때문에 감탄하고 플롯에 실망한다. 어떤 쪽의 무게추가 기울지는 한 번 정도 더 봐야 알 것 같다.





장단점 다음에는 후속작들에 대한 궁금증이 남는다.


- 실패했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루크가 제다이 양성을 했던 적이 있다면, 다른 곳 어디엔가 최소한 초급의 제다이 혹은 못돼도 파다완 정도 되는 포스 유저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스토리에 개입될 것인가. 아니면 카일로가 타락하면서 다 죽여버린 건가.


- 말만 퍼스트 오더지 사실상 그냥 제국군과 공화국이 공존하는 세계관? 이게 어떤 형태인지 아직 가닥이 안 잡힌다. 퍼스트 오더로 이름이 바뀐 걸 보면 일단 황제 시절의 제국정은 무너졌다는 소린데, 그 수십년 세월 동안 제국군 잔당이 아직도 남아서 황제 시절을 능가하는 군사력을 키우는 동안 공화국은 기껏 레지스탕스로 짤짤이나 넣는 게 최선이었나? 신 공화국은 그 정도로 무능한 건가.


-...했는데 존나 멸망....클래식 삼부작의 그 개고생들이 존나 무색해진다...황제랑 베이더만 사라진다고 금세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 안 했지만, 그래도 그렇지...그냥 선출직 공무원 임기 끝나서 물러나고 다른 사람 들어온 거나 다를 게 없네.


- 카일로 하는 꼬라지 보니까 제다이로 치면 끽해야 파다완 수준이던데, 그런 벤을 스노크가 타락시켰다는 건, 벤이 아직 루크의 보호 하에 있을 때 그 주변에 얼쩡거릴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거네.


- 제일 모르겠는 것. 루크조차 잃어버렸던 아나킨의 광선검은 대체 누가 어디서 찾아냈나.

- 제일 기대되는 것. 아무리 봐도 루크는 완전히 은거한 건 아니고, 나름대로 빵가루 뿌려놓고 레이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완벽한 후계자를 추상적으로 기다린 건지 아니면 바로 '레이'를 기다린 건지는 모르지만, 알투가 눈을 뜬 시점만 봐도 루크의 설계가 분명하다. 레이는 과연 루크와 무슨 관계일까.




그리고 그냥 잡담.

- 추이를 노리는 시든 귤같이 생긴 할머니가 천년을 넘게 살았다는데, 이게 한의 너스레거나 번역 오류가 아니라면 요다보다도 수명이 훨씬 긴거다. 대단하다.


- 가면 벗은 카일로가 되게 쓸 데 없이 눈빛이 촉촉하길래, 설마 돌쇠같은 핀과 나쁜 남자 카일로 사이에서 방황하는 삼각관계?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그런 거 없었다. 존나 다행.


- 퍼스트 오더 스톰트루퍼 새 옷은 애플에서 디자인 한 것 같다.


- 카일로 광선검은 켄다마같이 생겼다.


- 사이먼 페그, 뭔 역할이길래 코빼기도 안 비치나 했더니...대체 뭐하러 출연한 거지?


- 프리퀄에서 클래식 시대까지 제자리 걸음이던 홀로그램 통신 기술이 드디어 HD 시대를 맞이했다. 스노크 모공 보이더라.


- 영화의 최대 장점은 레이 여신. 헤르미온느 이후 오랜만에 새로 발굴한 판타지 장르 여신이다. 짤 수집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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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Ladcin 2015/12/18 09:18 #

    BB-8이 귀여웠다는건 확실히 말할수 있습니다. (토치로 따봉도 날릴줄 알다니!)
  • 멧가비 2015/12/22 00:30 #

    따봉 되는 버전 피규어가 나올 것 같더군요. 아니면 라이터로라도.
  • 잠본이 2015/12/27 15:21 #

    레이는 여신을 넘어 군신 레벨이더군요. 대체 누구한테 훈련받은겨(...)
    사이먼 페그는 뭐 그냥 반 재미로 나온거 아닌가 싶고...얼굴도 안나오는 역할이니
    크롬에디션 장교의 잉여화는 그저 눈물만 나오고...

    그나저나 켄다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과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멧가비 2015/12/27 19:06 #

    사이먼 페그는 그냥 자기 자신이 이스터에그가 되는 게 재밌어서 나온 건가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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