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2015) by 멧가비


애거서 크리스티라는 이름 자체가 장르를 상징하는 이름 중 하나가 되었고, 애거서의 작품들은 후대에 영향을 끼치다 못해 그 플롯들이 이젠 장르 팬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봤을 법한 클리셰가 된 지경이라, 당대에 원작을 읽던 독자와 같은 신선한 몰입감과 흥분은 사실상 느끼기 힘들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후대에 이르러 거듭해 작품이 다른 매체를 통해 리바이벌 되는 것은 순전히 재창작자의 역량에 달려있는 셈이다. 이미 아는 작품을 더 얼마나 재밌게 만드는지 혹은 알던 것도 잊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드는지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BBC가 만든 3부작 드라마는 꽤 성공적이다.


정식 번역본을 정독한 적은 없지만 대강의 플롯과 범인이 밝혀지는 결말까지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드라마를 보는 초반에는 그 미스테리어스한 분위기에 말려서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고, 중반부가 지나면서는 이미 범인을 알고 있지만 어쩌면 다른 결말로 흐를지도 모른다는 반신반의의 상태가 되었다. 범인을 알지만 그 범인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봤으니 꽤 재미있게 본 셈이다.


범죄 추리물의 조상과도 같은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에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스토리 자체는 자칫 심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중심 인물들이 연새 살인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고 그저 죽을 순간만 기다리다가 여지없이 죽어 나간다는 전개는 현대 헐리웃 작품들에 길들여진 세대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전개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고전의 심심한 맛'을 메꾸는 훌륭한 연출이 있으니 드라마 자체는 좋다.


직접적인 살인 트릭이나 그에 대한 추리 등 물리적인 요소가 더 흥미로운 아서 코난도일의 작품에 비해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들은 정서적인 부분이 더 섬세하게 묘사되는 측면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더라도 극장 영화가 아닌 TV 드라마 포맷과는 궁합이 좋다 하겠다.


연기 잘 하는 영국 배우들이 잔뜩 나오는 점 특히 좋았다. 그런데 물 건너 온 샘 닐 형이 일찍 죽는 배역인 점은 아쉽다.



덧글

  • 닛코 2016/01/04 22:27 #

    역시 다들 평이 좋더군요
  • 잠본이 2016/01/05 23:35 #

    오호 각색을 잘했나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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