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Batman v Superman: Dawn of Justice (2016) by 멧가비


무리한 기획은 각본가로 하여금 무리한 각본을 쓰게 만들고, 무리한 각본을 받아 든 고용 감독은 얻을 것 없는 게임에 뛰어든다. 마음이 급한 영화는 결국 체해서 이상한 걸 토해내고 만다.


어릴 때 봤던 90년대 WWF 이벤트 매치가 떠오른다. 사상이나 방법론의 차이 등 설득력 있는 동기 대신, 어리둥절하며 끌려 나온 덩치들의 무의미한 싸움. 문제는 그게 배트맨이랑 슈퍼맨이라는 점이다. 슈퍼히어로 실사 영화 사상 가장 흥미로운 엔터테인먼트였어야 할 만남이 목줄에 끌려나온 투견들 싸움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이 실망스럽다.


오프닝을 보며 떠올렸던 농담이 있다. 만약 이게 마블 영화였다면, '우린 둘 다 마사의 아들이니, 우린 형제야'라며 둘 중 누군가는 너스레를 떨었을 거라고. 그런데 그런 썩은 농담보다도 못 한 게 실제로 벌어지기도 하더라.



각본을 까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캐릭터 별로 만 썰 풀자면,

배트맨

굉장히 좋다. 내겐 역대 최고의 배트맨.

자경단 경력 20년차 설정답게 침착한 가운데 순간 순간 튀어나오는 배트맨 특유의 예민함 또한 잘 묘사됐다. 벤 애플렉이 연기를 못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장비 활용도도 좋지만 맨 몸 격투 장면이 특히 좋다. 진짜 배트맨같은 배트맨은 처음이다. 이제 배트맨이 개한테 물려서 찔찔대는 꼴은 안 봐도 되겠다.

다만 좀 경솔하고 줏대가 없다. 배트맨이 슈퍼맨을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이점은 그 초인적인 용의주도함인데, 20년차 치곤 좀 서툴러 보이게 표현됐다. 최소한 Kr 가스의 효력이 지속되는 시간은 계산 했어야 한다.

뭔 판타지 영화 샤먼처럼 예지몽을 꾸는 것도 웃긴데, 그 꿈에 꽂혀서 슈퍼맨을 죽이려는 것도 어이 없고, 기껏 죽이려다가 존나 개그같은 이유로 갑자기 친구먹는 부분에선 각본에서 발냄새가 난다.

'고담시로 유인해야겠어' 부분은 재고의 여지 없이 최악이다.



슈퍼맨

새벽에 자다가 전화 받고 술자리에 불려 나온 것처럼 영화 내내 뾰루퉁하다. 선행을 그딴 얼굴로 할 거면 다 때려치고 회사나 열심히 다니는 게 낫지 않나. 슈퍼맨은 그 모든 겐세이에도 '언제나 기꺼이' 하기 때문에 슈퍼맨인 건데.

'맨 오브 스틸'에서 살인을 경험한 슈퍼맨이 어떻게 변할지가 꽤 관심사였는데, 정답은 존나 막가파가 된다, 였다.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진 않지만 죽인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으며 협박을 한다. 배트맨에게 그 정도의 적의를 품는 구체적인 이유도 없을 뿐더러, 단지 배트맨이 법을 어기는 자경단이기 때문에 그런 태도를 취한다면, 다른 악질 범죄자들은 대체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렉스 루터

역대 렉스 루터 중 최악. 맥락 없이 이상한 성대모사나 하는 미친놈이다.

초월자인 슈퍼맨을 질투해서인지, 배트맨처럼 외계의 위협으로 간주해서인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냥 미친놈 악당이 하나 필요해서 만든 과장된 캐릭터일 뿐.

연기 마저 거슬린다. 짜증날정도로 톤 다운 된 영화에서 더 짜증나게 혼자 시트콤 연기를 하고 자빠졌다. 그런 거슬리는 대사 톤이 렉스 루터의 캐릭터를 더 좋게 만들지 않는다. 그만 나오던가 빨리 입이라도 다물었으면 좋겠는 렉스 루터는 처음이다.

그런 주제에 모든 걸 알고있다. 진짜 샤먼은 이 새끼였다.




원더우먼

잘 만든 캐릭터인지는 모르겠고, 워낙 잠깐 나와서 삽질 할 시간이 없었다.
액션은 멋있다. 잭 스나이더 연출의 큰 수혜자.




영화가 안 좋을 때는 보통, 어느 부분을 어떻게 고쳤으면 훨씬 좋았겠다,라는 '진단'이 나오는데 이건 그게 안 나온다. 애초에 기획부터 대단히 많은 리스크를 안고 시작했고, 그게 다 현실로 드러난 경우다. 배트맨과 슈퍼맨이 한 영화에 나온다는 기획은 어쩌면 이쪽 장르의 덕질을 시작한 사람들에겐 덕질 시작 이래 평생을 꿈 꿔 온 로망일 거다. 그런 로망을 이렇게 시발.

이쯤되니 한스 짐머의 음악마저 꼴뵈기 싫어진다. 각각의 장면들이 주는 실제 감흥에 비해 음악만 너무 자기 뻑에 취해서 '존나 멋진 장면이지?'라고 강요하는 느낌이 들더라. 다만 둠스데이 시퀀스의 음악은 존나 좋았다. 제목이 'Is She With You?'라던데, 귀에 감길 만하면 로이스 레인이 맥을 끊는다. 그 여자 죽든 말든 존나 알 바 아니라고.



-결론
좋은 부분 있으나 전체가 나쁘다.
배트맨, 원더우먼은 건졌다.
렉스 루터 좀 어떻게 해라.


-번외로 재밌는 점,
웨인 부부 역의 배우가 제프리 딘 모건과 로렌 코언이네. 로렌 코언 캐스팅 된 건 몰랐다.
워킹데드 팬으로선 만감이 교차하는 캐스팅이다.


- 해프닝,
대각선 뒷자리 어느 관객 曰

"대박...둘이 형제야?"

팝콘 그만 먹고 영화를 봐라.






연출 잭 스나이더
각본 데이빗 S. 고이어, 크리스 테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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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펜타토닉 2016/03/24 22:06 #

    잭스나이더 주소 삽니다.
  • 멧가비 2016/03/24 22:13 #

    사견입니다만, 스나이더보다는 기획과 각본의 탓이 커 보입니다.
  • 펜타토닉 2016/03/24 22:37 #

    크게 한방해먹고 튀자고 영화를 만들어도 이지경으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 멧가비 2016/03/24 22:59 #

    이런 큰 프로젝트에서 고용 감독의 권한이라는 게 생각하시는 것보다 꽤 작을 겁니다.
  • 펜타토닉 2016/03/24 23:25 #

    두번째 댓글은 말씀하신 기획단계, 그러니깐 수뇌부에서 먹고 튀려고 만들어도 이정도는 아니었겠다라는 이야기였습니다 ㅇㅇ
  • 멧가비 2016/03/24 23:40 #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공감합니다.
    차라리 먹고 튀는 게 나았을 겁니다. 그럼 다음 영화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었을테니까요.
  • ㄴㅂ 2016/03/24 22:34 # 삭제

    아니 대체 왜 이렇게 되어야 했던 걸까요...... 반지닦이처럼 각본가가 트롤링을 한 것도 아니고 판포스틱처럼 감독이 막 분탕질을 친것도 아니고 대외적으로는 잘 만들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도대체 어째서
  • 멧가비 2016/03/24 23:41 #

    더 높으신 분들이 분탕질을 친 것으로 추측합니다.
  • 니킬 2016/03/24 23:06 #

    렉스 루터 얘는 관련 묘사가 나온 것도 아니고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자꾸 자기 아버지 타령을 해대는게 왜 이러나 싶더군요.
    나중에는 슈퍼맨이나 다른 사람들한테도 아버지 타령을 해대서 그냥 그런 놈인가 했지만, 처음에는 핀치 의원 아줌마한테 밑도끝도 없이 하는게 그 의원이랑 아버지랑 불륜해서 얘를 낳은거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멧가비 2016/03/24 23:42 #

    그냥 횡설수설 하는데, 사실 그게 다 떡밥이었다는 반전을 기대하긴 힘들 것 같습니다.
  • 케이즈 2016/03/24 23:13 #

    안그래도 먼저 본 친구가 딱 두줄평을 해주더군요.
    1. 저스티스리그의 끝.(끝? 시작이 아니라?)
    2. 보다가 하품한 영화는 오랜만이었다.

    이쯤되니 얼마나 영화가 막장인지 보러가야겠습니다. 내일 가야겠어요 ㅋㅋ
  • 멧가비 2016/03/24 23:43 #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마음이 급해지진 않더군요.
  • 더카니지 2016/03/25 00:18 #

    작중 배트모빌, 배트윙 액션 시퀸스에서 놀란 감독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메카닉 기동씬이 놀란 때와 달리 밍숭멩숭했어요...
  • 멧가비 2016/03/25 02:00 #

    맞습니다. 그 부분에선 확실히 결정적인 차이가 느껴지더군요.
  • ㅁㄹ 2016/03/25 00:56 # 삭제

    진짜....요즘 WWE에서 짜는 레슬러들 대결 스토리가 이거보단 훨씬 개연성 있음
    아니 비교하는게 미안할 지경
  • TokaNG 2016/03/25 10:36 #

    뒷자리 여자관객의 말이 진짜 대박이네요.
  • 멧가비 2016/03/25 22:18 #

    제대로 이해 못 한 관객 탓인지, 이해 안 가게 만들어먹은 영화 탓인지 모르겠더군요.
  • Grand Magus 2016/05/31 15:54 #

    아이센버그의 루터는 루터라기보다는 그냥 너드같은게.... 후반부는 이도저도 아닌 미친놈 같더군요 그냥 배트맨 독백 도입부 뜯어다가 뱃맨 솔로영화로 시작해서 돈옵저로 이어졌으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 멧가비 2016/03/25 22:20 #

    그러게말입니다. 뱃맨 단독 영화는 진짜 먼저 나왔어야 했습니다.
  • 솔까 2016/04/09 12:14 # 삭제

    뒷자리 여성분들을 탓할 수가 없다....
  • 스텔스모드 2016/04/09 21:51 # 삭제

    Is She With You는 원더우먼 테마곡입니다. 둠즈데이에게 여성격she를 쓸 이유가 없지요
  • 멧가비 2016/04/09 21:56 #

    둠즈데이 테마곡이라고 안 했어요
  • ?! 2016/10/28 09:48 # 삭제

    영화가 얼마나 설명을 못했길래 그걸 형제로 착각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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