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이싱 에이미 Chasing Amy (1997) by 멧가비


뉴저지 한량 시절을 토대로 만든 전작들과 조금 다른 느낌이 있지만, 알고보면 역시나 케빈 스미스의 자전적인 부분이 녹아 들어있는 영화. 공개된 레즈비언이기도 한 여배우 '기네비어 터너'를 짝사랑했던 본인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만든 각본이라고. 확실히 전작들처럼 시작부터 끝까지 장난과 농담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사일런트 밥은 모든 출연작 중 가장 대사가 길고 진지하다.


실없는 농담이나 늘어놓기 좋아하는 감독이 꽤 섬세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애담. 레즈비언을 사랑하게 된 남자의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다. 레즈비언을 사랑하게 된 것에 혼란을 느끼는 것을 시작으로, 사실 양성애자였던 그녀의 마음을 얻어 연애 관계를 맺지만 겪어 보지 못했던 세계를 결국 감당치 못해 못나게 구는 마지막까지.


게이 코드를 내세우지만 이야기의 본질은 보편적인 연애와 다를 것이 없다. 현실 연애를 하다 보면 뭔가 화가 나는데도 뭐 때문에 화가 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극 중의 홀든이 딱 그런 꼴이다. 홀든이 화났던 이유는 대체 뭘까. 그저 알리사의 경험이 많은 것 그 자체 때문이었을까. 혹은 홀든의 말 그대로 자신보다 더 경험이 많은 것에 스스로 위축됨을 느껴서였을까.


홀든은 알리사와 사귀기 전에 자기가 레즈비언을 사랑하게 됐다는 것만으로 꽤 고민을 했으며 고백하는 순간에는 다신 보지 못할 각오까지 했다. 그러나 레즈비언인줄만 알았던 알리사가 동네방네 알려진 쓰리섬으로 수치스러운 별명까지 얻어가며 이미 다른 남자들과 자유롭게 섹스를 했었다는 사실이 그 모든 고민과 힘들었던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어쨌거나 결국 홀든의 마지막은 케빈 스미스 영화 속 또 한 명의 '못난 남자'다. 심지어 홀든에게는 알리사와 거의 헤어진 것 같은 이후에도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다. 그 마저 못나게 망쳐버리지만.


마지막 장면이 인상깊다. 완전히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마주쳤을 때의 아련한 느낌을 일부러 포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묘사한다. 벤 애플렉이 연기를 참 못 하던 시절인데도 그런 거 상관 없이 말이다.


케빈 스미스는 각본 단계에서 이미 제이슨 리와 조이 로렌 아담스를 염두에 뒀었는데, 데이빗 시머와 드루 배리모어를 캐스팅하고 싶어했던 제작사 측의 자본을 까내면서까지 자신의 원래 캐스팅을 관철했다고 한다. 꽤 영리하고 용감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재미난 트리비아

1. 알리사의 쓰리섬 상대 중 하나인 릭 데리스는 '점원들'에 나왔던 느끼한 트레이너.

2. 그 트레이너랑 눈 맞아서 같이 나간 헤더 존스는 알리사의 여동생.

3. 알리사는 대학 시절 섀넌 해밀튼과도 섹스를 했었다고 하는데, 섀넌 해밀튼은 '몰래츠'에서 벤 애플렉이 맡았던 배역.

4. 잠깐 등장한 애니메이션 업자 짐 힉스는 '점원들' 단테와 사촌.

5. 작중 홀든과 뱅키의 만화인 '블런트맨과 크로닉'은 이후 작품인 '제이 & 사일런트 밥의 역습'의 발단이 된다.

6.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벤 애플렉의 분량.

덧글

  • 닛코 2016/04/18 22:37 #

    지금까지 제목이 "체이싱 아미"인줄 알았었는데... 한글제목이 어디선가 그렇게 나왔었던 것 같아요.
  • 습자지내야진 2016/04/19 15:22 # 삭제

    맞아요~ 한국 제목은 체이싱 아미였습니다.
    "아미"라고 쓰면 밀리터리 영화처럼 보여서 사람들이 많이 볼거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물론 흥행은 망함;;)
  • 멧가비 2016/04/19 22:17 #

    저도 정확히 '아미'라고 번역됐던 비디오로 봤습니다.
  • Semilla 2016/04/19 09:46 #

    처음 보았을 땐 잘 이해를 못했었는데,
    이 리뷰를 읽으니 다시 봐볼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레즈비언들 중에는 이 영화가 레즈비언이란 성적으로 만족시켜주는 남자를 못 만난 여자라는 인식을 준다고 비판하는 반응이 있더라고요. 그런 뜻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에 대한 케빈의 반응이 뭐였는지는 지금 까먹었네요.)
  • 멧가비 2016/04/19 22:15 #

    그렇게까지 날 세워서 볼 영화까진 아닌데 왜들 그랬을까요. 물론 레즈비언들이 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방식 전체를 그 레즈비언들이 대변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 제목없음 2016/04/24 22:31 #

    그 부분은 레즈비언을 사랑한 이성애자 남성을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라면 한 번은 들을수 있는 관점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 작품의 경우는...다분히 케빈 스미스 적인 감성으로 묘사했다보니 누가 봐도 말이 많을수 밖에 없는 부분이긴 했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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