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Captain America: Civil War (2016) by 멧가비



뜻이 맞아 결성된 인디 밴드가 있는데, 너무 잘 나가다 보니 대형 기획사에서 반 강제적으로 스카웃 제의를 한다. 근데 거기 가면 밴드가 아니라 아이돌이야! 고성 방가로 신고 당할 일 없어 좋겠고 수입은 짭짤하겠지만 원치 않는 음악으로 원치 않는 행사에 동원되어야 한다. 멤버들은 당연히 찬성 반대로 편을 나눌 수 밖에.


"그런데"
소코비아 협의안은 예상 외로 어벤저들이 충돌하는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더라.

"하지만"
무력 충돌 외에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는 중요한 극적 장치이긴 하다.


캡틴의 입장에선 눈 앞에 당장 죽게 생긴 친구가 있고 뒤에선 협의안의 압박이 들어오고 있는 진퇴양난의 형국이며, 토니 로서는 캡틴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무력으로라도 막고 싶을 뿐이다. 협의안 자체에 대한 둘이 입장도 이해가 간다. 캡틴은 상위 기관의 변질을 직접 경험했다. 아이언맨은 관리 되지 않는 무력이 어떻게 남용되는지를 직접 확인하고 아이언맨이 되길 선택했으며, 강한 무력이 끼치는 확산 피해라는 것을 소코비아에서 깨달았다.


'어벤저스 2.5'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캡틴 아메리카는 비중 면에서 손해를 보지만, 이야기의 중추 역할을 하고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벌어지는 충돌들이 모두 캡틴 아메리카의 선택과 행보에 의해 발생된다는 점에선 여전히 캡틴 아메리카의 영화가 맞다. 뭣보다 각각 중간보스와 끝판왕 역할을 하는 악당이 모두 캡틴을 노리고 있다.


캡틴은 "시간의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을 꾸준히 드러내 왔다. 현시대의 인물인 다른 어벤저들과 달리 캡틴은 70년 전 브루클린에 '스티브 로저스'라는 보통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두고 왔으니까. 페기의 사망 이후 말라깽이 스티브 로저스의 내면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버키 뿐이다. 캡틴에게 버키는 스티브 로저스의 아이덴티티가 존재했었음에 대한 증명과도 같다. 게다가 버키에게도 역시 자신 뿐인 걸 알기 때문에 공권력과의 충돌을 감수하면서까지 앞만 보고 달린다. 그런 단순하지만 우직한, 역시나 캡틴 아메리카스러운 타협 없는 선택이 영화의 클라이막스 직전 까지를 이끌어간다.


존재감이 약한 듯, 하지만 영화의 메시지인 '부수적인 피해'를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헬무트 지모. 타겟의 감정선까지 고려한 치밀한 계획과 인내심,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냉정함, 그리고 인간적으로 동정할 여지가 있는 동기까지. BvS의 렉스 루터가 잘 만들어졌다면 이런 캐릭터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방법론적이나 감정 면에서 각각 '올드보이'의 우진과 [가메라 3]의 아야나가 오버랩되기도 한다.


스파이더맨은 예상외로 파격적인 비중을 할당 받았더라. 그런데 [스파이더맨 홈커밍]에 등장할 악당이 벌처라던데, 외관상 비슷한 팔콘이랑 여기서 벌써 맞붙어버리면 새로워야할 구경거리를 미리 약간 본 느낌이다. 하지만 이 세계관에 드디어 입성했다는 것만으로 반갑다.


앤트맨은 명맥이 끊겼나 싶은 '사이즈 체인지'류 영화들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이 있어 좋다. 전편에서 '애들이 줄었어요'가 연상됐다면 이번엔 '아이가 커졌어요'겠지. 다음 단독 영화에선 CG보다는 아날로그한 세트와 소품을 더 활용했으면 좋겠다.


블랙 팬서는 그저 멋지다. 여태 MCU는 메카닉 SF, 스페이스 오페라, 에스피오나지 등 온갖 장를르 MCU화 하면서 능수능란하게 다뤄왔는데, 이제 견자단의 영역까지 건드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직접 등장이 없는 페기 카터.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시리즈 전통에 맞게 작지만 의미있는 역할이다. [퍼스트 어벤저]에서는 인간 스티브 로저스의 내면을 처음 바라보고 지지해 준 사람이었고 [윈터 솔저]에서의 치매 걸린 모습은 쉴드가 변질되어 제 기능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복선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협의안에 대한 캡틴의 결정에 힘을 실어주는 한 마디를! 어쩌면 캡틴이 샤론에게 금방 마음을 연 건 샤론 역시 미약하게나마 캡틴의 과거와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일지도.


토니는 만화판 [시빌 워]에서와 달리 도덕적으로나 방법론적으로 지탄 받을 부분이 없어졌다. 미성년자인 피터 파커를 끌어들인 부분이 조금 찜찜하지만 애초에 코믹스처럼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는 싸움도 아니었으니. 협의안에 대한 선택도 이론적으로는 옳았다. 다만 좀 더 절박했던 캡틴에게 상황이 따라줬을 뿐이다.


다른 캐릭터들은 크게 말 할 건 없고, 각자 신념 없이 친목질 싸움 뿐이었다는 지적이 조금 부당하다는 생각은 든다. 세상의 싸움 중에 그 싸움의 구성원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심지어 만화판 시빌 워조차 구성원 모두의 이야기를 다루진 않았다. 설마 그 중에 무심코 휩쓸린 놈이 하나도 없을까. 게다가 솔저 타입의 캐릭터들이 캡틴에게 갖는 절대적인 신뢰 역시 시리즈 내내 꽤 알기 쉽게 다뤄진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클린트의 은퇴 번복과 나타샤의 입장 번복 모두 자연스럽다. 자신이 신뢰하는 리더의 결정을 지지하고 힘을 보태는 것 또한 신념이다.


영화가 은근히 섬세하다고 느낀 건, 절정에 도달한 공항 싸움에서조차 서로 전력을 다하지 않는 듯한 모습에서다. 대표적으로 아이언맨은 거의 기본적인 수트에 기본 무장만 사용했으며 완다는 단 한 번의 정신 공격을 하지 않는다. 모인 대부분이 원치 않는 싸움이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도 없는 심정적 핀치가 느껴졌다. '주먹이 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특히 어벤저스 원년 멤버 4인방은 속으로는 울면서 주먹을 날리는 듯 보인다.


공항 장면은 액션 자체도 물론 훌륭하다. 텅 빈 공항이라는 점에서 예산 절감의 냄새가 났지만 오히려 시야가 시원하게 트이니까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 특유의 '움직임 좋은 액션'이 잘 보여서 좋다. 마침 도시 파괴의 쾌감에도 슬슬 피로해진 참이었다.


단점이 없는 영화가 어딨겠나. 잘 만든 영화란 장단점이 또렷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이 영화는 내게 장단점이 명확히 보인다. 하지만 그 단점들이 너무 작고 적다. 내게 이 영화의 유일한 단점은 사무엘 L. 잭슨이 출연하지 않는다는 것 뿐이다.




p.s -  루소 형제가 아직 [커뮤니티]팬들을 잊지 않아서 존나 감동. 솔직히 짐 래쉬 나왔을 때 제일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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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ㄴㅂ 2016/05/01 07:28 # 삭제

    사무엘 잭슨 본인도 출연이 없음에 당황했다는 카더라가 있었죠
  • 멧가비 2016/05/01 16:34 #

    확실히 섭섭하긴 했겠죠
  • lelelele 2016/05/01 09:31 # 삭제

    루소형제 인터뷰에 토니의 스파이더맨 섭외의 배경엔 이런 설정을 깔아놨더라고 하더라고요. 작중에 나온 아연맨이 입수한 피터의 초인적인 능력과 거미줄을 사용하는 영상을 보고 반대파들을 무력화시키고 체포하기 위한 것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네요, 이건 두가지 토끼를 다 잡은 것 같다고 생각한게 스파이더맨섭외에 대한 당위성도 가지면서, 토니또한 반대파와의 대결에서물러설수도 없지만, 피할수 없는 대립이라면 차라리 상처없이 멤버들을 잡아두고 싶은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캡과 토니는 평행선을 걸을 수 밖에 없는 사이이지만 동시에 서로를 위하는 마음도 강하다고 느껴졌어요. 버키와의 캡의 유대가 형제애라면 캡과 토니는 동료로서 서로를 아낀다고 해야 할까요? 작중내 캡의 행동들과 최종대결씬을 보면 더욱 그런것 같구요.
  • 멧가비 2016/05/01 16:35 #

    그 마음들이 대부분의 싸움 장면마다 미묘하게 드러나서 좋았습니다.
  • 소시민A군 2016/05/01 13:34 #

    닉 퓨리는 형식상 죽은 상태라 공식무대에는 나서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을 것 같군요.
  • 멧가비 2016/05/01 16:35 #

    그 발 동동 구르는 모습이 보고 싶었습니다.
  • ㅇㅇ 2016/05/01 16:50 # 삭제

    공항씬에서 히어로들이 처절하게 안싸워서 실망했다는 반응이 있긴했죠. 영화 콧구멍으로 본거 인증하는것도 아니고
  • 멧가비 2016/05/01 20:08 #

    처절하게 싸우길 바라는 것 자체야 뭐 취향 차이 아니겠습니까
  • 더카니지 2016/05/01 18:53 #

    아이언맨이 순진한 능력자 소년인 스파이더맨을 현혹해 자세한 전후사정도 안알려주고 단순히 저기편으로 삼아전투의 도구로 이용하는 모습이 좀 그랬어요.
  • rumic71 2016/05/01 19:07 #

    이것도 넓게 보면, '초인은 통제되어야 한다'는 토니의 신념을 실행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 멧가비 2016/05/01 20:07 #

    그런 부분이 코믹스와 비슷한 지점 중 하나인데, 그나마도 코믹스와는 달리 사생결단 까진 안 갈 거란 확신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습니다.

  • 뭄무지 2016/05/01 20:51 # 삭제

    개인적으론 no you move가 페기가 한 말로 각색되어버린 게 가장 섭섭했습니다. 코믹스처럼이야 안되겠지만 그래도 영화 내에서 적당하게 상황 조성해서 로저스의 입에서 나오게 하도록 할 줄 알았는데, 그거 듣는 거 기대하고 갔는데, 뒤통수 얻어맞은 느낌이네요. ㅋㅋ 이런 식으로 삽입할 거면 차라리 넣지 말지 싶다가도 영화만 놓고 보면 적절한 활용이어서 뭐라 할 수도 없고... 써먹기 적당한 지점이 나왔는데도 원작 설정 안 건드린다고(내 희망사항이지만..) 있는 거 놔두고 굳이 같은 말을 돌리면서 각본을 쓰기도 뭐했을 거고요.
  • 멧가비 2016/05/02 01:49 #

    그렇게 적절하게 바꾸는 맛에 실사화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 뭄무지 2016/05/02 23:54 # 삭제

    ㅎ... 별 맛은 없네요. 이번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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