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Lifeforce (1985) by 멧가비


엉성하고 구멍이 많은 영화지만, 희생자들이 자신의 의사와는 별개로 뱀파이어에게 이끌린다는 굵직한 설정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설정에 설득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뱀파이어 대장이 홀라당 벗은 마틸다 메이였기 때문이다. 예전 '천녀유혼'의 왕조현을 보면서 느꼈던 '완벽한 피조물'이라는 느낌과 비슷한 것이 있었다.


처음 마틸다 메이가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이 인상깊다. 당시의 흔한 공포 영화라면 그랬을 법한, 갑자기 송곳니를 드러내고 시뻘건 눈을 희번덕거리며 놀래키는 수법을 쓸 걸 예상하고 있다가 역으로 반전을 당했기 때문이다. 마틸다 메이 뱀파이어는 등장 내내 새까만 눈동자로 순진함 이상의 투명한 표정을 지으며 희생자들을 응시한다. 이 묘한 불일치가 마틸다 메이 뱀파이어를 더욱 그로데스크하게 만든다.


불일치함이 매력적인 영화다. 하이테크놀러지 장치들이 튀어 나오는 영화에서 빅토리아 시대 고전 뱀파이어의 느낌을 풍기는 여자 뱀파이어가 나신으로 돌아다니는 그 묘한 시대 착오적인 느낌에서 조형미를 느낀다.


'스피시즈'를 보며 비슷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난다. 뱀파이어냐 기생 생물이냐의 차이지 시각적으로는 사실 공통적인 부분이 있다. 조금 거리가 있지만 이토 준지의 '토미에'도 그렇고, 미녀의 시각적인 관능미를 공포의 정서와 동일시하는 관념은 어느 문화권에든 존재하는 모양이다.



연출 토브 후퍼
각본 댄 오배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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