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빌 Smallville (2001 ~ 2011) by 멧가비



'로스트'와 더불어 나의 미드 입문작. 제목만 보고선 시골 마을이 배경인 일상물인 줄 알았다. 오랜 슈퍼맨 팬으로서 스몰빌이라는 마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을 자책하면서도 새로운 슈퍼맨 드라마를 발견했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시골 마을이 배경인 일상물이 맞기도 하다. 그 일상에 건초 더미 나르기보다 유성 돌연변이들을 무찌르는 일이 더 잦다는 점이 미묘하지만.


농촌에서 자란 외계인 청년이 정체성으로 고민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며 밝게 성장해가는 초반의 분위기가 좋다. 라나와의 로맨스는 뻔하지만 풋풋한 맛이 잇었고, 클로이와 피트 등 친구들과의 우정 파트는 건강한 청춘물을 보는 느낌이기도 하다. 또한 그와 동시에 집착과 경계심이 뒤섞인 렉스와의 미묘한 우정이 메인 스토리로 펼쳐지는 부분이 흥미롭기도 하다. 결과를 알지만 그에 이르는 과정을 관찰하는 프리퀄 장르의 맛이 꽤 좋다.


청춘은 짧듯이, 드라마 역시 초반부의 좋은 느낌을 오래 가져가지 못한다. 이야기를 길게 뽑기 위해 전개는 더뎌지고, 더딘 전개를 메꾸기 위해 급조하는 이야기들은 설정을 무리하게 왜곡시킨다. 결과적으로 캐릭터성은 무너지고 배우들은 하차하는 등 총체적 난국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결과를 알고 보는데 그에 이르는 과정이 끝이 안 보이는 프리퀄 장르의 약점 역시 그대로 안고 갔다는 게 문제.


라나는 중세 마녀가 됐다가 집착녀도 됐다가 복수귀가 되기도 하고 렉스는 배우의 하차로 있어도 있는 게 아닌 캐릭터가 된다. 주인공 클락은 모두가 알고있는 그 슈퍼맨이 되기엔 인성과 정서 면에서 너무 많은 데미지를 입는다. 저대로 그 슈퍼맨이 될 수 있는 거야? 싶을 정도로.


끝까지 캐릭터성을 잃지 않고 호감을 유지한 건 클로이 뿐이지만 그 클로이조차 유성 괴물이 됐다가 브레이니악의 아바타가 됐다가, 하차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등의 찜찜한 과정은 마찬가지였다.


제목에 대한 집착인지 비즈니스의 악습인지, 본격적인 슈퍼맨 이야기를 다룰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도 슈퍼맨과 DC 코믹스의 온갖 캐릭터는 다 끌어다 쓰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클락 켄트만 혼자 제자리 걸음인 루저처럼 보이게 된다. 모두가 어른이 되는데 혼자 망설이면서 성장을 거부하는 찌질이 피터 팬으로 전락하고 만다.


까놓고 말해, 클락이 언제 어떻게 날게 되고 파란 쫄쫄이를 입게 되는지 그거 하나 보려고 10년을 기다린 건데, 그렇게 되기까지 열 개의 시즌을 소비했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가 않는다. 나중엔 고집을 꺾지 않은 배우 탐 웰링 본인에 대한 섭섭함 까지 생기더라.


중반부 이후의 실망감이 너무 크고 이야기의 구멍들을 메꾸는 허술한 땜질 등 단점이 너무 많지만, 마치 언젠가 내가 하늘을 날 것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앞으로의 전개를 기대하며 감상하던 초반부의 두근거림이 잊혀지지 않아, 결과적으로는 기분 좋게 기억하게 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영원한 전설의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의 유작이라는 점에서도 팬에게는 의미있는 작품이고.


이 때 쌓은 노하우들이 '애로우'와 '플래시' 등 지금의 DC-CW 라인 드라마들을 만드는 거름이 된 건데, 영화 쪽에서 저스티스 리그 프로젝트를 크게 벌이고 있어 아주 오랫동안 슈퍼맨 드라마를 볼 수 없을 거라는 점이 아쉽다. 물론 지금의 '슈퍼걸'을 보면 이제 슈퍼맨 드라마는 아예 안 만드는 게 낫다는 생각 역시 들지만, '로이스 앤 클락'의 사례를 보면 장르를 아예 틀어서 좋은 작품을 기대해 볼 법도 하지 않은가.



핑백

  • 멧가비 : 애로우 Arrow (2012 - 2020) 2021-01-05 06:09:50 #

    ... 슈퍼맨만 슈퍼맨이 못 된 채 다른 초능력자들의 대환장 파티였던 [스몰빌] 이후 CW가 다시 꺼내든 카드는 놀랍게도 그린 애로우였다. 본격 인간 영웅을 다루기로 한 점도 놀라운데 그것도 격투기 마스터 그린 애로우를? 여기서 이미 예감 ... more

덧글

  • 더카니지 2016/05/13 16:20 #

    아마 탐 웰링이 계약할 때 슈퍼맨 코스튬 안 입기로 했었나 그랬던걸로 대충 기억. 왜그랬을까 싶어요.
    예전에 3시즌에서 하차했는데 미리 포기하길 잘했다고 생각.
  • 멧가비 2016/05/15 14:46 #

    이후의 배우 경력을 걱정했던 거겠죠. 그런 점에서는 이해가 가긴 합니다.
  • 잠본이 2016/05/14 23:42 #

    유성괴물 때려잡기도 사실 예전 '슈퍼보이의 모험' 드라마(이름은 슈퍼보이지만 나이는 대학생인 기괴한 설정)에서 나온 크립토나이트 맨이란 놈의 컨셉을 시즌제로 잡아늘린 것이다보니 가면 갈수록 안습이 되어가는...
  • 멧가비 2016/05/16 22:39 #

    어찌보면 이런 장르를 드라마 포맷으로 옮김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구조일지도 모르겠네요.
  • dd 2016/11/23 13:56 # 삭제

    막장드라마화 되었던 이유가...

    당시 cw 사장이 여자였는데 가십걸 같은 부류를 좋아해서 슈퍼내추럴과 스몰빌에도 그런 막장 요소를 우겨 넣으라고 압력 넣었다는군요. 결과는 두 드라마 모두 원래 가지고 가던 분위기를 망치면서 시청률 폭락, 회사에 엄청난 타격을 줬고, 그 책임을 물어 경질...

    윗대가리가 ㅂㅅ이면 잘 가던 드라마가 망가진다는 좋은 사례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