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트레이시 Dick Tracy (1990) by 멧가비


90년대 초반은 슈퍼히어로 혹은 코믹스 기반 실사영화 장르에 있어서 지금과는 또 다른 느낌의 황금기이기도 했는데, 팀 버튼의 '배트맨' 이후 스크린에는 30년대 코믹스가 그 시절 느낌 그대로 재현되는 일종의 붐 같은 것이 있기도 했다. 대공황의 30년대 하드 보일드 형사물의 상징과도 같은 '딕 트레이시' 코믹스가 스크린으로 옮겨지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감독이자 타이틀 롤인 워렌 비티를 포함,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만 등 화려한 캐스팅도 눈 여겨 볼 부분이다. 게다가 마돈나! 그 마돈나의 과감한 노출을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시 이 영화의 핵심은 비주얼이다. 개미 꼬일 것 같은 원색의 향연, 심도 분리 디옵터, 의도적으로 세트와 소품 티가 나는 미장센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단지 원작 만화 속 시대상의 재현 뿐 아니라 화면 자체를 만화처럼 만들어버린다. '만화같음'을 넘어 숫제 만화처럼 그린 일러스트를 배경으로 메꿔버리는 과감함까지. '신 시티' 이전에 이 영화가 있었다.


특히 30년대 범죄 만화에 나오는 도시의 야경을 그려낸 배경 일러스트는 80년대 현대미술을 연상케 하는데, 팝 아트 이전의 앤디 워홀에게 모티브를 준 만화 중 하나가 바로 '딕 트레이시'임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상호 작용이다.


또 하나의 상호작용인데, 만화 딕 트레이시의 영향을 받은 만화 배트맨은 영화로 만들어지고, 영화 배트맨은 영화 딕 트레이시에 영향을 준다. 심지어 음악 감독이 대니 엘프먼. 영화 도입부를 보고 있으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가 있었나 착각할 정도다. 시청각을 고루 만족시키는 가히 예술적 상찬인 영화라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가 있냐고 한다면 조금 미묘하다. 캐릭터들은 스테레오 타입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80년대 영화 평균 수준의 장르적 재미와는 조금 다른 느낌. 유명한 배우가 우루루 나온다고 영화가 무조건 좋아지는 건 아니다, 라고도 말하고 싶지만 전형성에 갇혀있지 않은 꽤 재미있는 캐릭터가 딱 둘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게 파치노와 호프만이 각각 연기한 빅보이와 멈블스다. 역시 좋은 배우는 일단 쓰고 볼 일이여.


그 외에 그냥 왠지 재미있는 장면을 하나 꼽자면, 마돈나를 처음 만나고 감정이 묘해진 워렌 비티가 갑자기 애인한테 살갑게 구는 장면이다. 뭔지 모를 리얼리티같은 게 느껴져서 괜히 웃기더라.



핑백

  • 멧가비 : 트론 Tron (1982) 2016-12-06 19:26:45 #

    ... 상 쯤 되는 중요한 지점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를 어이없게 허물어버린 시각적인 면에서는 요즘의 CG 영화들 대부분, 특히나 [딕 트레이시]나 [신 시티] 등은 확실히 빚을 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연출 각본 스티븐 리스버거 ... more

덧글

  • 포스21 2016/05/22 00:08 #

    90년대에는 뭔가 마이너하고 기묘한 히어로 영화들이 붐이었죠. 스폰 도 그렇고 , 쉐도우 라던가? 저지 드래드 등등 그런데 그닥 크게 히트한건 없네요. 그나마 짐캐리의 마스크 정도가 2편까지 나오면서 어느정도 흥행했죠.
  • 멧가비 2016/05/23 21:00 #

    당시 슈퍼히어로 장르가 지금처럼 대박을 치는 장르가 아니었던 걸 감안하면 다들 어느 정도는 흥행맛 좀 봤을 걸요. 스폰같은 경우는 꽤 컬트적인 인기도 있었고요. 오히려 마스크 2편이야말로 제대로 실패한 영화죠.
  • 잠본이 2016/05/22 21:13 #

    블랭크의 정체는 좀 흥미로웠습니다. 나머지는 그냥 화면이 참 컬러풀하구나 싶었고 줄거리는 그냥 평범
    당시 인기가 있었는지 제작진중 덕후가 있었는지 몰라도 드라마 '슈퍼소년 앤드류'에서 이거 패러디가 나와서 데굴데굴했던 기억이 (초능력가진 주인공이 딕트레이시 복장하고 나와서 기관총을 그냥 몸으로 막아버림)
  • 멧가비 2016/05/23 20:59 #

    그 드라마는 태생부터가 코믹스의 정서를 깔고 있으니 그럴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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