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캅 RoboCop (1987) by 멧가비


냉전으로 인한 핵전쟁의 공포, 신자유주의, 불안한 치안과 고용 불안정 등 당시 미국 사회에 팽배하던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꼬집는 사회 풍자 블랙 유머 SF의 걸작.


당시 미국의 문제와 무관하게 공감하며 읽어낼 수 있는 서브텍스트로는 '인간의 자아'에 대한 탐구가 있다. 사이보그로 부활한 알렉스 머피는, 인간의 뇌가 그대로 갖고 있긴 하지만 사후에 테크놀러지를 이용해 재생된 경우이기 때문에 정확히 인간 그대로의 뇌라고는 볼 수 없는 상태.


결국 고도의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복원된 뇌'라고 여길 수 있는데, 그와 같은 경우라면 알렉스 본인이 스스로를 알렉스로 여기는 것인 생물학적 인간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기억을 토대로 인식'하는 후천적 자아에 가까울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확신하는 것의 본질은,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뇌의 자각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고 자란 기억에 의존한 것일 수도 있다는 화두를 영화는 던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영화가 디트로이트 시에 대한 묘사로 드러내는 주제의식과도 닮아있다. 어지간한 SF 호러 영화 이상으로 무섭게도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이 떼로 등장해서 멀쩡히 남아있는 알렉스의 왼팔 마저 떼어버리는데, 그것은 곧 인간성보다 자본의 논리나 테크놀러지가 더 우선시되는 세계관을 상징한다.


그렇게 인간성이 상실된 세상에서 생물학적인 신체를 유지하는 인간들(범죄자들)과 알렉스 머피(로보캅)의 차이는, 타고난 그대로의 신체의 차이가 아니라 스스로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태도의 차이가 더 본질적이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이는 복제된 인공 생명체에도 인간성을 부여했던 '블레이드 러너'와도 맞닿아 있는 부분.



어릴 때는 그냥 기깔나는 로봇이 나오는 액션 영화였지만 나이를 먹고 세대가 바뀌어가며 다시 볼 수록 생각해 볼 여지가 점점 많아지는 깊은 영화이기도 하다. 꽤 많이 삭제된 버전을 비디오로 봤음에도 어린 나이에 상당한 쇼크를 받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알렉스 머피 역의 피터 웰러가 로봇 연기를 끝내주게 해서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 측면 역시 간과할 수 없다. 앤서니 대니얼스 이후 최고의 로봇 마임이라고 감히 평가한다.


메탈 히어로 시리즈의 시초인 '우주형사 갸반'의 영향이 있다고 알려져있고 실제로 토에이와도 협상을 했다곤 하지만, 그건 그냥 마찰을 미리 예방한 것으로 보이고 실질적으로는 거의 공통점이 없다. 적어도 표절 혹은 라이센스 리메이크라고 부르긴 무리가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DC 코믹스의 사이보그가 있는데 굳이 다른 레퍼런스를 찾을 필요가 있을까.



핑백

  • 멧가비 : 사이보그 G짱 CYBORGじいちゃんG (서울문화사) 2016-06-26 23:4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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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로보캅 2 Robocop 2 (1990) 2016-06-27 16:2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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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16/06/26 23:51 #

    솔직히 컨셉만으로 보면 갸반보다는 에이트맨에 가까웠죠. 죽은 형사를 기계로 되살려서 부려먹으니...
    좀 개그인건 나중에 토에이에서 거꾸로 이거 베낀 '기동형사 지반'을 찍음 (넓적다리에 홀스터 있는것까지 비슷)
  • 멧가비 2016/06/27 15:07 #

    오오 그걸 아시네요
  • Sdam 2016/06/27 10:52 #

    1편에 한해서는 터미네이터 보다 더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 멧가비 2016/06/27 15:08 #

    터미네이터 1편을 기준으로 한다면 저는 못 고르겠어요
  • 남중생 2016/06/27 13:35 #

    "결국 고도의 프로그래밍을 이용해 '복원된 뇌'라고 여길 수 있는데, 그와 같은 경우라면 알렉스 본인이 스스로를 알렉스로 여기는 것인 생물학적 인간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기억을 토대로 인식'하는 후천적 자아에 가까울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인간임을 확신하는 것의 본질은,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뇌의 자각이 아닌, 인간으로 태어나고 자란 기억에 의존한 것일 수도 있다는 화두를 영화는 던지고 있는 셈이다."
    ▲이건 상당히 프랑켄슈타인 모티브네요. 기억은 아니더라도 후천적 인간성이라는 점에서...
  • 멧가비 2016/06/27 15:08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현대 창작물에서 '과학이 낳은 괴물'이란 설정은 프랑켄슈타인 괴물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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