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브라맨 ゼブラ-マン (2004) by 멧가비


주인공 이치카와 신이치는 평범한 사람인데도 제브라맨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서자마자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그를 넘어 위기의 순간엔 단순히 제브라맨을 흉내낸 누군가를 넘어 그 자신이 진짜 제브라맨이 되어 초인 그 자체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출생의 비밀도 뭣도 없는 남자가 뜬금없이 초인 영웅으로 탄생하는 비논리적인 이야기는 그 이면의 서브텍스트를 읽는 것이 더 재미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영화는 '(될 거라는) 믿음의 힘과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조금 작은 관점에서의 영화는 복장도착자가 꾸는 꿈을 시각화한 것처럼 보인다.


단지 세일러복을 입고 거리를 걸은 것만으로 체포된 여고사의 이야기는 사회가 복장 페티쉬를 바라보는 시선을 상징한다. 단지 남들과 다른 취향을 가졌을 뿐인데 이를 범죄로까지 규정하는, 어찌보면 튀는 것을 죄악시하는 일본의 전체주의와도 겹치는 면이 있는데, 초등학교 교사인 중년 남성이 코스프레를 통해 힘을 얻는 것은 이런 사회적 터부에 정면으로 맞서는 일이다.


신이치는 맨 처음 제브라맨의 복장을 입었을 때는 집 앞의 자판기를 이용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그러나 괴인 '게 남자'를 만나자마자 초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이는 동류(同流)와의 만남에서 얻은 자신감에 대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신이치는 거대한 외계인을 물리치고 도시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붕괴되다시피했던 신이치의 가족은 마지막에 화합의 가능성을 조금 보이는데, 이는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며 위축된 가장이 자신감을 되찾아 가정의 균열을 봉합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재미있는 아이러니는, 가족 중 신이치를 가장 무시하던 딸이 가짜 세일러복을 입고 원조교제를 하는 부분이다. 게다가 그 원조교제 상대가 바로 게 남자라는 점. 순수하게 복장만을 즐기는 매니아가 사회 규범의 선을 넘은 도착자를 물리치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참으로 미이케 타카시가 만들만한 슈퍼히어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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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울트라맨 지드 ウルトラマンジード (2017) 2017-12-29 14:11:43 #

    ... 절망과 그것을 해소하는 데에 있어서 리쿠가 감명깊게 기억하는 가상의 고전 히어로 특촬 드라마의 존재가 중요하게 작용한 점. 이는 미이케 타카시 감독의 2004년작 [제브라맨]의 플롯에서 영향받았을 것으로 추측 가능하다. 전작이 철저하게 쿠레나이 가이와 저글러스 저글러, 두 맞수의 이야기에 촛점을 맞춰 다른 캐릭터들은 다소 한발짝 물 ... more

덧글

  • lelelelel 2016/07/01 22:51 # 삭제

    만화책판도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 멧가비 2016/07/02 14:27 #

    영화보다 조금 수위가 높았었죠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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