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트리니티 Blade: Trinity (2004) by 멧가비


앞선 두 편 그러했듯, 이 영화 역시 배트맨 시리즈의 구조를 따라가는 방식을 취한다. 즉, 배트맨 시리즈의 몰락마저 간단히 재현해낸다는 것. 워너는 예나 지금이나 가능성 있는 시리즈에 재 뿌리는 짓을 참 잘 한다. 다짜고짜 새 캐릭터만 투입하면 잘 될 거라고 믿는 워너의 무신경한 기획은 '배트맨과 로빈'에 이어, 이 영화, 그리고 '던 오브 저스티스'로 이어진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조합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누군가가 영화 제작 파트 수뇌부에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좋은 감독이 각본도 잘 쓰는 게 아니라는 잭 스나이더의 예처럼, 데이빗 S. 고이어는 좋은 각본가가 감독도 무조건 잘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전작들과 달리 대놓고 뱀파이어처럼 생긴 뱀파이어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것은 이 영화가 약 두 시간 동안 굉장히 촌스럽게 전개될 거라는 점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아니나 다를까, 2편에서 고딕 호러를 끌어와 꽤 독특한 분위기로 시리즈의 품격을 끌어올렸는데 다시 1편 때의 철지난 테크노 액션으로 회귀한다. 이른바 '스타일리시 액션'이라는 후까시는 매트릭스가 단물 다 뽑아먹어서 아주 짧은 기간만에 낡은 게 돼버렸다는 걸 영화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연출만 촌스럽고 각본은 문제가 없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각본 역시 얼핏 봐도 이해 안 가는 부분 투성이. 블레이드가 경찰의 대규모 추적을 받는 것 부터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도 아니고 사람 죽이는 녹화 영상 단 하나가 제보됐을 뿐인데 그렇게 엄청난 경찰력이 동원된다는 게 개연성 없는 일이고, 체포하러 온 경찰들에게 총을 마구 쏘는 위슬러도 캐릭터성이 무너진 케이스다. 자신이 살기 위해 무고한 인간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거면 애초에 뱀파이어 헌터 일은 왜 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 않나.


경찰에게 쫓기는 블레이드라는 설정 자체는 좋았다. 차라리 뱀파이어 전체에 대한 인간들의 대대적인 역습을 테마로 잡아서, 그 토벌대의 공격 앞에 싸잡아서 뱀파이어로 몰리는 블레이드의 이야기를 했다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기획과 연출이 유별나게 나빠서 그렇지, 이 역시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꽤 앞선 면이 있다. 나이트 스토커즈 팀을 구현해 팀 업 무비를 시도한 것도 앞섰고, 특히 세 캐릭터의 조합 자체는 좋았다. 초인적 완력의 블레이드, 총잡이 한니발 킹, 궁수 아비게일의 조합은 어벤저스의 땅개 3인방을 떠올리게 한다.


라이언 레이놀즈의 한니발 킹은 쉬지 않고 수다를 떤다. 원래부터 데드풀 캐릭터에 강한 애착이 있었다던 레이놀즈가 이미 이 때 부터 다른 캐릭터에 데드풀 테이스트를 녹여내는 시도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제작 뉴라인 시네마 배급 타임워너



덧글

  • ㄴㅂ 2016/07/03 20:18 # 삭제

    헉 레이놀즈가 여기도 나왔었군요. 괜히 근성의 사나이가 아닌
  • 멧가비 2016/07/05 00:31 #

    인간 승리의 과정을 지켜 본 것 같은 느낌.
  • lelelele 2016/07/05 12:29 # 삭제

    참 아이러니한게, 뉴라인시네마가 마블로부터 사들인 판권중 아이언맨과 블레이드는 본가로 돌아가 버렸는데 데드풀은 그렇지 못했다는거요. 뉴라인시네마가 워너본사로 흡수되면서 시장에 내놓은 데드풀판권을 폭스가 냉큼 사가버렸다는 걸 알게 되니까 우연도 참 이런 우연이 없다 싶더라고요. 어벤저스와 인연이 있는 스파이더맨은 양사 합작을 통해 리붓되어 mcu에 합류하고, 엑스맨코믹스를 기반으로 탄생한 데드풀은 폭스의 품으로 임대나가버리다니....
    결과적으론 어느 회사에 있던 좋은 작품만 나올수 있다면야 아무래도 상관없지만요.
    만약 뉴라인시네마가 기획했던 데드풀과 아이언맨영화가 블레이드처럼 세상에 나오게 됐다면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됐을까요?...
    그리고 어차피.지금같이 마블이 디즈니품안이 있는 한은 데드풀같은 캐릭터의 실사영화 권한은 다른 곳에 있는게 결과적으론 나았지만, 당시 마블은 자기네꺼 안찾아가고 뭐하고 있던 걸까요?
    데드풀판권이 시장에 나온 시기상으론 디즈니산하도 아니었고, 마블이 자사의 영화판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시기인데 말이죠....
  • 멧가비 2016/07/07 15:47 #

    그 판권 이동의 과정만 갖고 영화로 만들어도 재밌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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