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렐 Laurel (2015) by 멧가비


우선 마음에 드는 영화의 태도는 로렐과 스테이시의 로맨스를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 점이다. "이 둘이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나"가 아닌, "이 둘은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그런데..."를 말하는 영화로서 적절한 생략이다.


영화는 쓸 데 없이 감정을 쥐어짜지 않고 오히려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늘 중저음의 정서를 유지한다. 암 걸렸다고 부둥켜 안고 질질 짜고, 이런 거 없다. 나 암 걸렸으니 날 떠나서 더 좋은 사람 만나, 하는 식의 신파도 없다. 로렐과 스테이시는 상황이 어찌됐건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의심하지 않고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건조하면서 동시에 따뜻하다. 따뜻하려고, 따뜻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온기를 전달하는 점이 좋다.


실화로 이미 알려진 내용보다는 배우들의 연기가 더 인상깊은데, 상업 영화에서의 줄리언 무어 한 명의 몸값에도 미치지 못할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정작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이 엄청나다. 영화의 크기에 따라 몸값도 탄력있게 조절하는 헐리웃 배우들의 방식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중반을 지나면 로렐은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다. 소수자에게도 평등하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쟁점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며 로렐은 그 쟁점의 아이콘으로 객체화 될 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줄리언 무어의 진짜 연기력 폭발 역시 그 시점부터다.


경찰 파트너인 데인은 로렐에 대해서 '정의라는 것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그리로 로렐은 정말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까지 자신이 믿는 "평등의 정의"가 실현될 것에 대해 단 한 치도 의심하지 않는 듯한 모습으로 일관한다. 로렐은 자신의 투쟁에 대해 단 한 번도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게 정말 멋지다.


마치 정의의 실현이 사랑의 완성인 것처럼 그 둘을 떼어놓지 않고 생각하는 굳센 로렐과 달리, 스티브 카렐이 맡은 유대인 캐릭터는 소수자의 권리 획득이라는 큰 싸움을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는 로렐을 그 투쟁의 깃발로 세우고 싶어한다. 그런 그를 이기적이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법적 제도라는 거시적 관점에 더 큰 가치를 뒀을 뿐이고, 로렐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을 뿐이다. 스티브 카렐은 코미디와 정극을 오가는 내공을 적절히 휘두른다. 춤을 추듯 대사를 쏟아내면서도 영화의 톤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잘 컨트롤된 연기를 뽐낸다. 서글픈 영화에 숨통을 트여주는 캐릭터다.


죽는 순간 까지 멈추지 않았던 로렐 헤스터의 "정의" 덕분에, 동거인에게 연금을 양도하는 것이 허용된 선례가 남았을 뿐 아니라 뉴저지에서의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되었다고 한다. 추측컨대, 로렐의 직업적인 신뢰도가 큰 몫을 했을 것 같다. 대충이나마 알고있는 officer라는 직업군에 대한 미국 사회의 존중과 존경심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부럽다. officer들이 존경 받는 게 부럽진 않은데, 존경할만한 officer들이 존경받을 만한 업무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셋팅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