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도럼 Pandorum (2009) by 멧가비


영화 속에서 이주민 수송선의 이름이기도 한 '엘리시움'은 그리스 신화 세계관의 천국과도 같은 개념이다. "자격"을 갖춘 자만이 갈 수 있는 이상향적 사후세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갈로 상병은 엘리시움에 승선할 자격, 즉 팬도럼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멘탈을 갖추지 못했다. 부적격자 하나가 인류의 존망을 망칠 뻔 한 셈이다.


팬도럼은 방아쇠였을 뿐, 갈로가 학살자로 타락하게 된 것은 인지부조화 때문으로 보인다. 지구 인류의 멸망에 충격을 받아 팬도럼에 빠졌다는 건 그 역시 인류의 생존을 이어가려는 의지를 가진 인물이었다는 건데, 그 자신의 손으로 다른 팀원들을 죽였으니 그 인지부조화의 상태에서 선택한 것은 남은 인류의 목숨을 갖고 장난치는 미치광이가 되는 길이었던 것이다.


온전히 팬도럼에 사로잡힌 광인이 아니라 인지부조화로 만들어진 모순 덩어리라는 증거가 바로 페이튼 중위의 인격이지 않을까. 남은 인류를 식인종으로 만들어가면서 까지 미쳐가고 있는 와중에도 내면 한 구석에 남은 사명감이, 기억상실이라는 무방비 상태에서 다른 인격으로 나타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했는데 그 잇몸이 꽤 좋은 영화다. 예산의 한계를 가리기 위해 사용된 어두컴컴한 실내 조성은 되려 영화의 공포감, 절망감 그리고 숨막힐 듯 갑갑한 기분까지 잘 표현한다. 영화 내내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그게 결말과도 관련이 있었다니! 눈에 보이는 장치나 대사가 아니라 조명을 통한 "느낌"으로 복선을 깔아 둔 것이라면 대단하다. 물론 얻어걸린 거겠지만.


지식과 문명, 욕망은 갖췄으되 기술과 자원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타니스에 정착한 인류의 문명은 어떻게 발전할까 생각해봤다. 예상컨대, 2~3 세대가 지나면 스팀펑크 세계관을 이룩하지 않을까. 문득 '이블 데드 3'가 떠오른다.


연출, 각본 크리스티앙 앨버트



덧글

  • 더러운 눈의여왕 2016/07/10 01:32 #

    근데 결말은 잘 쳐줘도


    "그곳에 괴물들이 자라고 있다"


    인데 과연 다시 조우하게 될 그날에
    잔존 인류가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제일 좋은 건 그 안에서 지들끼리 물고 뜯어서
    자멸하는 거겠지만 생각해보면 새로 정착한
    곳에 그 이상의 위협이 없으란 법도 없고...
  • 멧가비 2016/07/10 03:24 #

    돌연변이들은 당연히 수장 됐을 거라고 생각해서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봤네요. 진짜 해저에서 진화했으니 수중에서도 살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뭐, 어떻게든 인류가 이길 거라고 봅니다. 이성도 이성이지만 인류의 내공 깊은 탐욕을 이기긴 힘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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