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후 28 Days Later (2002) by 멧가비


21세기를 지나면서 이제 "좀비 영화"라는 것은 사실상 장르의 영역을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의 슈퍼히어로들 처럼, 이야기를 전달할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가 장르를 결정짓지는 않게 됐다는 것.


이 영화는 사실 좀비 영화로 분류하기엔 여러모로 부적합하다. 결정적으로 영화 속 크리처들은 그냥 감염되어 미쳤을 뿐인 "산 사람"이지 절대로 움직이는 송장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 살아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점은 단순히 설정의 차이만이 아닌, 이야기에서 긴장감을 구성하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당시로서는 이게 좀비 영화냐 아니냐를 논할 필요가 있었지만 상기했다시피 워낙에 좀비 영화의 변주가 넘쳐나는 요즘에 와선 존나 무의미하다는 거다. 이 영화의 좀비가 좀비이건 아니건 간에, 21세기의 새로운 좀비 영화의 패러다임을 만든 건 사실이니 말이다. 좀비 영화가 아니면서 새로운 좀비 영화의 시조가 된, 추존된 왕 쯤 되는 영화라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일단 좀비라고 친다.)


좀비가 달리기 시작했다는 건 단순하게는 영화의 속도감과도 관련이 있지만 그보다는 영화 속 생존자들이 좀비에 대응하는 방식 자체가 선배 영화들에서의 패턴과는 판이하게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폭력성을 띄는 존재가 기동성까지 갖췄다는 건 단 하나의 개체만으로도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클라이막스를 제외하면 좀비"떼"라고 부를만한 것이 나오질 않는다. 좀비를 달리게 만든 건 어쩌면 저예산으로 그럴듯한 좀비 영화를 만들기 위해 짜낸 자구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강하게 느껴지는 정서는 "절망감"이다. 텅 빈 런던 거리를 비추면서 시작되는 절망감은 '영국인 주제에 비가 오지 않는다'는 대사로 정점을 찍으며, 그저 민간인에 불과했던 초기 생존자들이 유일하게 기대려고 했던 군인들(공권력)마저 악의를 품는다는 것은 절망감의 완성이다.


영화 속 상황으로 유추해보면 영국만이 바이러스의 피해를 입은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섬 국가로서의 고립감을 은유하는 것이었을까. 90년대 말과 2천년에 걸쳐있던 영국 경제성장률 적자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후비안들에게는 애증의 대상인 크리스토퍼 에클리스턴이 연기한 '헨리 웨스트 소령'이 캐릭터 중에선 꽤 재미있는 인물인데, 주인공 짐 일행 입장에선 명백한 악인이기는 하지만 마냥 전형적인 악당으로 규정 짓기도 복합적인 태도를 보인다. 소령은 첫 등장시 "국가 재건"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밝히는데, 여자를 취하려는 것은 단순한 성욕이 아닌, 인류 존속이라는 동기를 나름대로 베이스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순한 강간이 목표였다고 보긴 힘든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합리적이지만 비윤리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또한 "부하들에게 약속했다"라는 언급으로 봐선 정부와 문명이 사실상 붕괴된 상황에서 부대의 리더라는 위치를 지키려는 욕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데, 현실의 정치가들이 시민에게 편의를 제공함에 있어서, 시민의 욕망과 정치가의 목적이 반드시 상호 일치하지만은 않는 것과도 같다.


셀리나는 주체성은 약하고 객체로서 기능하는 캐릭터다. 훗날 '워킹데드'나 'Z네이션' 등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칼잡이 흑인 여성" 캐릭터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짐은 내내 온건하고 유약한 태도로 일관하다가 군인들에게 대항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무언가에 각성한 듯 전투력을 발산한다. 특히 마지막 싸움에서는 짐 자신도 마치 감염자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되기도 하는데, 어쩌면 일시적으로나마 짐 역시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가지 엔딩 중 짐이 사망한 엔딩이 가장 진짜에 가까운 엔딩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