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이론 Kill Theory (2009) by 멧가비


빈 산장에 쌍쌍이 모인 방종한 십대들. 이제는 설명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클리셰로 시작하는 영화는 살인마의 조금은 낯선 제안으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살인마가 일일이 찾아가서 죽이는 대신 "너희들끼리 죽여라" 라며 미션을 부여한 것이 바로 그 것. 산장 슬래셔와 배틀로얄을 섞은 셈인데, 문제는 제대로 못 섞었다는 거다.


두 개의 레퍼런스에서 가장 재미없는 부분만을 골라서 섞은 느낌이다. 친구들끼리의 상호 살인에는 최소한의 설득력도 없으며 살인마는 게으르다. 친구들이 서로 죽인 건 살인마의 설계 때문이 아니라 그냥 지독하게 멍청했기 때문이다. 멍청해서 죽는 영화가 재밌을리가 없지. 설득력은 포기하고 마냥 B급 영화로만 즐기기엔 슬래셔나 고어로서의 기술적인 부분 역시 형편 없다. 차라리 시원하게 죽이기라도 하던가.


보통 등장인물들이 스테레오 타입으로 채워져 있는 건 보통의 경우라면 플롯의 독특함을 역으로 강조하기 위해서다. '캐빈 인 더 우즈'의 사례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캐릭터, 플롯 모두가 뻔하고 그것을 연출의 기교로도 메꾸지 못하고 있다.


영화가 다른 의미로 끔찍한 건 극중 십대들이 지독하게도 순수하지 못함에서 온다. 단순히 미성년자로서의 방종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십대. 그 나이대라면 그래도 아직은 우정, 신뢰 등 순수한 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을 때가 아닌가. 그러나 이 녀석들은 우정을 논하면서 서로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는, 이미 찌든 기성 세대들의 모습을 너무 일찍 닮아있다. 


덕분에 살인마가 가장 멍청해 보인다. 딴에는 자신만의 살인 이론을 증명하려는 거였는데 그냥 운 좋게도 멍청하고 서로 불신하는 친구들을 골랐을 뿐이다. 소 뒷걸음질로 쥐 잡아놓고 정신 승리하고 있을 살인마가 오히려 애잔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