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 키드 Turbo Kid (2015) by 멧가비


기본 설정은 간단하다. 핵으로 문명이 붕괴된 세계관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이 소녀를 만나 영웅이 되는 이야기다. 클리셰로 구성된 심플한 플롯 위에 B급 취향을 자극하는 많은 레퍼런스들이 고명처럼 얹혀있는 재미난 영화.


자세한 설정은 언급되지 않지만 핵폭탄 이후의 세상이라는 암시가 있다. 게다가 코믹북의 소재일 뿐인 것처럼 묘사됐으나 사실은 실존했었던 슈퍼히어로 "터보 라이더"와 사악한 로봇의 존재. 대략, '터미네이터'처럼 로봇이 반란을 일으키고 결국 핵까지 터뜨려 공멸한 세계관 쯤으로 추측할 수 있다. 이후야 뭐 당연히 '매드 맥스'인 거고.


무법 지대의 위협들을 피해 안전하게 살아가던 소년은 '애플'이라는 소녀를 만나는데 이 둘의 이야기는 제법 산뜻한 틴 로맨스의 구성에도 접근한다. 선댄스 풍의 화사한 색감이 로맨스의 산뜻함을 더해주는데, 그 화사한 톤이 '매드 맥스' 액션을 넘어 상당히 악취미적인 고어와 섞이니 영화가 미묘한 맛을 낸다. '고무인간의 최후'를 화사한 화면으로 본다고 생각을 해보라! 되게 상큼하게 뻘건 피랑 내장을 뚝뚝 흘리고 있는 거다.


영화의 개성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또 다른 축은 80년대 풍의 미장센인데, 영화의 극중 시간대부터가 대충8말9초 쯤에서 문명이 멈춘 이후의 세계관이다. 영화의 타이틀 로고부터 노골적이거니와 극중 내내 깔리는 음악들 역시 80년대 풍이다. 주인공 소년과 애플과 관련있는 액정 화면 또한 80년대 도트 게임을 연상시킨다. 그러고보면 80년대를 넘어 80년대의 영향권 내에 있는 90년대 비디오 게임들을 연상시키는 부분들도 있는데, 주인공 소년의 외향적 디자인은 '커맨더 킨'과 유사한 듯 보이고, 극중 시간적 배경인 1997년은 '터미네이터', '듀크 뉴켐'의 그것과 일치한다. 취향 제대로 때려맞는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 지점은 바로 저예산의 한계다. 연료와 자원에 대한 설정은 전혀 언급되지 않지만 어쨌든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얼기 설기 고물로 짜깁기한 머슬카 같은 것은 구경도 할 수 없는데, 매드 맥스 풍의 갱들이 낑낑대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초현실적 풍경만의 맛이 또 색다르다.


아무래도 영화 제작비 대부분은 (80년대 배우) 마이클 아이언사이드의 출연료, 그리고 고어 특수 효과에 쏟아붓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뜬금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고어 장면의 수준이 매우 좋다. 아이디어를 짜낸 흔적이 보여서 만족스럽다. 클라이막스 싸움의 인간지네 비스무리한 그 무언가는 정말 히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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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좋다. 미친년인데 좀 곱게 미친년. '토이즈'의 조앤 큐색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미묘하게 있다.
주인공 키드보다 존재감이 큰 히로인인데, 간만에 맘에 드는 미친년 하나 만난 기분.
애플 피규어 사고싶다. 그런 게 있겠냐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