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사이드 스쿼드 Suicide Squad (2016) by 멧가비


핵심부터 얘기하면 꽤 좋다. 처참했던 [배트맨 대 슈퍼맨]에 비하면 더할나위 없다. 사실 DCFU에 대한 기대치가 있었던 만큼 치명적인 단점이나 특별히 거슬리는 부분만 없어도 기꺼이 좋아할 준비가 돼 있었는데, 그걸 던옵저는 못했고 이 영화는 해냈다.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건 PG-13이라는 저연령 등급의 한계다. 덕분에 캐릭터들은 악당 출신이라는 원작의 설정만 빌려왔을 뿐, 또 다른 형태의 영웅들로 환골탈태해 버렸다. 악당이라기 보다는 악동에 가까운데,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리게 된다.



좋은 점

영화의 가장 큰 테마는 아마도 "나쁜 놈들도 사랑을 안다" 쯤 될텐데, 그런 맥락이 일관되게 유지된 점이 좋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주요 인물들의 행동 동기가 설명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소 간지러운 느낌 있지만 괜찮은 수준이다. 적어도 악행에 대한 변명으로 보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캐릭터성의 재해석도 만족스럽다. 원래부터 데드샷은 단순한 악당이라기엔 복잡한 인물인데, 작품의 톤에 맞게 팀 내에서 제일 정상적인 영웅 포지션을 데드샷이 맡은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심지어 릭 플래그보다도 정상인으로 보이더라.


할리 퀸도 [배트맨 TAS]의 원본보다는 코믹스 버전의 교활하고 전투적인 성향이 부각돼서 좋다. 개봉 전부터 이미지가 심하게 소비돼서 오히려 별 볼 일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기우였다. 카타나는 팀 중에서도 꽤 튀는 캐릭터일 수 있었는데 분량에서 밀린 점이 아쉽다. 하지만 마고 로비는 원래 코믹스의 팬인 건지 아니면 영화 준비를 열심히 한 건지,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해석력이 꽤 좋은 편이다. 장차 할리 퀸을 연기하는 실사 배우가 더 많아지면 (영화에 대한 평과 무관하게) 마고 로비가 '잭 니콜슨' 정도의 포지션이 되지 않을까.


엘 디아블로는 분량에서 밀렸지만 존재감은 살아남은 캐릭터.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감독 데이빗 에이어가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일관된 톤을 이 영화에서도 이어가는 유일한 캐릭터라는 점이다. 본작의 정식 후속작이 나오건 세계관의 다른 작품에서건 계속 보고싶은 캐릭터다.


조커는 앗쌀하게 핵심 인물도 아니고 깜짝 출연도 아닌 애매한 비중이지만 앞으로가 기대된다. '잭 니콜슨'과 '히스 레저'사이의 간극보다도 더 멀리 떨어진 새로운 느낌의 뉴 조커인데 그게 꽤 좋다. 비교적 현실 세계 갱 보스에 가까운 모습인데, 선배 조커들과는 달리 장기적으로 기획된 시리즈에서 두고 두고 써먹을 수 있도록 셋팅된 흔적이 보인다.


인챈트리스는 구리지만 멋지다. 아주 멋지게 구려.




나쁜 점

영화의 톤이 역시나 또 어둡다. 예고편에서 줄창 밀었던 펑키한 분위기는 막상 극중에선 할리 퀸 한 명에게만 집중되어 있는데, 그 할리 퀸이 생각보다 분량이나 분위기 장악력이 크질 못해서 영화의 톤은 역시나 조금 어둡다. 같은 맥락에서 나름대로 시도한 유머들 역시 모두 죽는다. 농담을 던지는 템포가 조금 센스 없다고 해야할까. 우울한 술자리에서 농담을 던졌는데 아무도 듣지 못하는 멋쩍은 농담이 돼버린 상황과도 같다. 그나마 부메랑쟁이가 옆에서 꽤 거들고는 있다.


상기했다시피, 악당들의 영화라는 부분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아놓고선 정작 결과물은 비교적 건전하다는 점이 역시 아쉽다. 낮은 등급의 한계 내에서도 선방했다고 봐야할지, 낮은 등급 자체를 탓해야할지 선후를 가릴 수가 없어서 애매하다. 아마도 이 톤 조절 실패에서 조커 캐릭터의 아쉬운 점도 연쇄적으로 따라오는 듯 하다. 영화 내내 조커가 뒷통수를 언제 치나 기대했는데 이 새끼가 알고보니 진짜 로맨티스트였다. 앞으로 어떻게 캐릭터성을 쌓아가느냐의 문제겠지만 일단은 조금 기대치를 떨어뜨리는 부분인 건 사실이다.


역시나 같은 맥락인데, 아무리 악당들이라는 설정만 빌려와서 흉내내는 점을 감안한다고 해도 특별한 계기 없이 너무 쉽게 의기투합한다는 점 또한 아쉽다. "나쁜 놈들이 사랑"이라는 테마를 통해 의외의 내면이 드러나며 서로 공감하는 모습을 그리려고 한 것 같은데 의도에 비해 연출이 약했다. 팀으로 뭉치기 전에 서로 동족혐오적인 모습을 더 보여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데드풀이 할리 퀸을 쏘지 않은 건 좀 더 설명이 있었어야 했다. 악당 팀이라고 모였는데 못되기로는 [데드풀] 하나를 못 이길 것 같다.


앞서 언급했지만 카타나의 분량이 지나치게 적어서 아쉽다. 개인적으로 기대했던 캐릭터라는 점도 있지만, 캐릭터 자체가 그냥 소모적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마지막에 할리에게 칼을 쥐어주기 위해 등장한 꼴 밖에 안된다.


소모적이기로는 나머지들도 만만찮다. 캡틴 부메랑은 던지라는 부메랑은 안 던지고 개그만 던지고 있고, 킬러 크록은 물에 들어가서 뭐하고 자빠졌는지 치사하게 안 보여준다. [어벤저스] 수준 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주특기 뽐내는 원샷 한 번 씩은 제대로 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 이래서 [젠틀맨 리그]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늘 주장하는 거다.


인챈트리스는 좋은데 다른 놈은 진짜 덩치만 큰 쪼다같다. 기량 떨어진 시절의 최홍만처럼 오지마 킥은 대체 왜 하고 자빠졌는 거며, 무슨 침 섞인 담뱃재 뭉쳐놓은 것처럼 생긴 마법 좀비들은 진짜 최악이다.


전반적으로 즐거운 데에 비해 인상깊은 장면이랄 게 딱히 없다. 특히 배트맨이나 플래시를 예로 들면, 보통 그런 식의 게스트 출연이면 되게 임팩트있게 등장하지 않나? 드라마에 가끔 나오는 조연처럼 되게 평범하게 등장한다. 데이빗 에이어 감독의 전작들 중에 재밌게 본 작품들이 몇 있는데, 생각해보면 영화 전체의 밸런스는 좋은데 뭔가 인상깊은 한 방이 있었던 것 같진 않다. 원체 영화를 멋지게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구만.


영화의 단점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인데 윌 스미스는 이제 되게 재미없는 배우가 된 것 같다. 분명 윌 스미스 얼굴만 봐도 웃기던 시절이 있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솔직히 말해, 이도 저도 아닌 느낌이다.





설정상 보완했으면 좋겠는 점

이젠 이런 크로스오버 시리즈에 익숙해져서, 그 동안 저스티스 리그는 어디서 뭐하고 있었냐는 질문은 이젠 더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배트맨이 아직 건재하고 플래시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시점인데 아만다 월러는 메타 휴먼을 경계한답시고 메타 휴먼 "범죄자"를 고용한 거다. 무슨 이런 미친 삽질이 다 있나 모르겠다. 메타 휴먼 대응 목적보다는 더러운 일에 쓰고 버릴 소모품 취급을 더 부각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




시리즈 차원에서 기대되는 점

서로 혐오하는 공생 관계라는 점에서 배트맨과 아만다 월러의 관계를 잘 살리면 흥미로운 적수가 될 것 같다.


할리 퀸 스핀오프에 대한 이야기가 있던데, 이건 진짜 기대된다. 반드시 데이빗 에이어가 감독, 각본을 맡아줬으면 좋겠다. 에이어는 사람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미쳐가는 모습과 그게 범죄로 이어지는 과정을 잘 만드는 사람이다.



결론

잘 만든 영화는 분명 아니지만 맘에 드는 부분들이 그렇지 않은 부분들의 합보다 미세하게 크다.
기대했던 건 이런 게 아닌데, 다른 쪽으로 괜찮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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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대부분의 유머가 그러했듯이, [사냥꾼의 밤] 오마주 역시 되게 알아보기 힘들 게 슬쩍 지나만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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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포스21 2016/08/03 22:01 #

    같은 소재의 애니가 있었는데... 그건 꽤 재밌더군요.
  • 멧가비 2016/08/04 15:53 #

    어설트 온 아캄 보셨나봐요.
  • 잠본이 2016/08/03 23:20 #

    조커가...로맨티스트라니...(머리짚)
  • leeeleee 2016/08/03 23:31 # 삭제

    개인적인 생각엔 재촬영으로 인해 영화의 톤 자체가 바뀐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막눈이라 어디라고 꼭 확실하게 꼬집어 말하진 못하겠는데 전개중 왠지 좀 끊기는 듯한 장면이 일부 좀 있었던 것 같고, 예전에 공개되었던 촬영장면이나 예고편, 몇몇 스틸컷등과는 좀 다른 분위기가 나더군요. 이게 워너의 간섭인지 제작 최후반부에 조금 개입한 제프존스의 영향인지, 분명 초기컨셉과는 다르게 노선변경을 하긴 한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애초에 이런 컨셉으로 나가려고 했던 걸지도요?
    현지에서 사전시사회를 자주 가져서 관객들의 반응을 많이 테스트했었는데, 그 중에 관람한 사람이 예전버전과 편집스타일이 좀 달라졌다는 얘기를 한 걸 본적이 있는데(조커의 분량이나 등장순서 등등 좀 변화가 있었나 봅니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 제작진이 나름 고심 많이 하긴 했었나봐요.
    감상 후 제일 와 닿았던 건 이 친구들은 자살특공대라는 이름보다는 사랑,우정특공대 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릴 듯 했어요.
  • leeeleee 2016/08/04 00:00 # 삭제

    아.. 역시 이것도 배트맨 대 슈퍼맨처럼 워너에서 압력 많이 들어간 결과물이라고 하네요

    http://extmovie.maxmovie.com/xe/movietalk/13379957

    데이비드 에이어의 원 버전이 궁금하군요.
  • 멧가비 2016/08/04 15:51 #

    워너는 워낙 그런 식이라 이젠 놀랍지도 않네요.
  • 유나 2016/08/04 11:57 #

    그냥 이번 조커는 할리퀸 눈에 보인 조커라고 필터링 하니 마음 편하게 볼수 있더군요..[.......]
    내 남자는 이렇게 멋지고 섹시하고 날 사랑하지!.... 라고 말이죠.;
  • 멧가비 2016/08/04 15:51 #

    그렇게 생각하면서 봐도 재밌었겠군요. 혹시나 한번 더 보게 된다면..
  • 노을 2016/08/04 18:26 # 삭제

    [정보] [수어사이드 스쿼드] 6주 대본 공개 (스포 번역 추가)

    http://bbs.ruliweb.com/etcs/board/300013/read/2118624?cate=all&search_type=subject&search_key=번역

    워너가 개봉일 맞추려고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한테 각본 완성하는데 6주 줬다고 하네요.
  • 멧가비 2016/08/05 22:13 #

    워너의 미친짓만 점점 진화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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