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이 The Boy (2016) by 멧가비


모리 마사히로(森政弘)의 논문에서는 로봇이 인간을 닮을 수록 불쾌감을 유발시키는 것을 증명하는 데이터로 한 그래프를 제시했는데, 해당 그래프에서 호감도가 뚝 떨어지는 부분을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라 명명했다고 한다. 여기서의 "로봇"은 인간을 닮은(닮기를 지향하는) 다른 어떤 무생물 개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에는 대표적으로 인간과 닮게 모델링한 CG 퍼펫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 보다 고전적인 영역으로 가면 인형(Doll) 또한 포함된다 할 수 있을텐데, 완벽히 인간과 닮아 불쾌감이 사라지기 직전의 영역 안에 있는 인형이 주는 그로테스크함은 이미 몇 편의 (특히 공포) 영화들에서 사용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사탄의 인형' 시리즈의 처키가 있을 것이고, 이 영화 역시 세부적으로는 다르지만 그 근본은 비슷한 정서를 가진다 하겠다.


처키처럼 구체적인 적의(敵意)를 드러내며 눈 앞에서 움직이는 경우와 달리, "마치 저 인형이 살아서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는 추상적인 공포에 더 가까운 경우다. "인형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관찰자의 상상력이 나머지 공포를 완성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완전히 모든 걸 다 보여주는 공포보다는 공포를 느끼게 만들 대상의 마음 속에서 공포를 끄집어내는 방식을 더 좋아한다. 마치 사용자 컴퓨터의 리소스를 훔쳐 쓰는 악성 웹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다만 영화는 조금 밀도가 낮다. "불쾌한 골짜기"라는 개념 하나만 가지고서는 애초에 긴 영화를 만들기가 힘들었을 거라 추측하는데, 때문인지 초반부에 인형 얼굴을 비춰주고 난 뒤에는 더 이상 공포가 느껴지지 않으며 내러티브도 어째 애매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철저하게 반전 하나만을 위한 사족처럼 헐겁게 매달려있다. 반전을 위한 밑밥들도 작위적이다.
(심지어 중반 쯤 되면 '푸콘 가족'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감이 부족했거나 "이만하면 됐다"며 안일한 태도로 시작한 영화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