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CEU 탐구 - DC 필름 유니버스의 문제점 by 멧가비


앞선 글에서 지적했던 것들(1, 2, 3 ) 논외로 치고,


기본적으로 DC의 실사화 작품들은 크리스토퍼 놀란 이후 큰 변화를 겪었다. 어쩌면 "놀란화(Nolaize)"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도 될 정도로, 모든 작품들에 '다크나이트 삼부작'과 같은 분위기를 심는 것이 바로 그 것.


CW 드라마 시리즈 중 '애로우'에는 이게 꽤 잘 녹아들었다. 수트의 디자인이나 캐릭터들의 액션이 비교적 현실적으로 고안된 건데, 앞서 만들어졌던 '스몰빌'의 분위기와도 일부 섞이면서 고유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영화 쪽에선 심각하리만치 놀라나이즈 돼서, 아예 놀란의 영화들에 필요 이상으로 천착하고 있다. 주요 인물들이 모두 놀란의 영화 속 캐릭터들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맨옵스' 때는 전에 없던 새로운 슈퍼맨인 점이 좋았고, 로이스 레인이 개성을 잃어버린 건 알 게 뭐냐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던옵저'까지 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파티 장면에 모인 브루스 웨인, 클락 켄트, 다이애나의 어조와 표면적인 성격에 차이점이 크지 않다. 그 세 캐릭터의 가면 뒤(Unmasked) 인격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었던 가장 좋은 장면에서 마치 한 부모 아래 태어난 남매처럼 굴고 있어, 마치 그 파티장이 "그런 성격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처럼 보일 정도다.
(덕분에 그 사이에 있던 렉스 루터는 더 미친놈처럼 보인다.)


이는 캐릭터의 개성을 형성하고 관계성을 쌓는 방식에 대한 (캐릭터의 기초적인 아이덴티티를 지시했을) 워너의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떤 만화가나 소설가들은 '작가는 신이 아니며, 캐릭터들은 스스로 움직인다'는 말 까지 한다. 이는 액면 그대로의 뜻 보다는 캐릭터의 개성에서 나오는 자생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캐릭터의 매력이 구축되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령 마블 시네마틱 영화들을 보면, 그 많은 캐릭터 중 무작위로 둘만 떼어다가 붙여 놨을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상상할 수 있고 어떤 정서를 교환할지 쉽게 예측 가능하다. 좋은 의미에서의 가측성이다. 이는 캐릭터들의 개성이 뛰어남으로 인해 캐릭터들간의 관계성도 자연스럽게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어벤저스'에서 말을 섞은지 단 몇 분 만에 캡틴과 토니가 주먹다짐할 뻔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반대로 '던옵저'를 보면, 직접적으로 트래쉬 토크를 주고 받는 배트맨과 슈퍼맨은 그렇다 치고, 따로 붙어있는 장면이 꽤 많은 배트맨과 원더우먼은 서로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가 전혀 표현되지 않는다. 물론 이 둘은 이제 겨우 영화 한 편에서 만났으니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섣부름은 관객이 아니라 워너의 기획이 만든 것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캐릭터간의 개성이 뚜렷했던 '수스쿼'가 아쉽다. 영화를 잘 만들었으면 훨씬 더 개성있는 영화였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마블, DC 등 만화를 베이스로 둔 영화들의 "재해석"을 더 선호하는 입장이다. 싱크로율 그딴 거 솔직히 존나 중요한 거 아니다. 특히 "만화의 옷을 그대로 입고 나오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은 의미도 없고 도움도 안 되는 헛소리다. 하지만 동시에, 그 캐릭터를 가져다 쓰는 최소한의 의미는 지켜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냥 그대로 갖다 써도 충분히 좋을 캐릭터들의 개성을 일부러 제거해서 다 똑같은 사람으로 만드는 건 더 바보같은 짓이다. 가령, 지미 올슨은 익숙한 캐릭터성 그대로 갖다만 놔도 이야기를 다양하게 만들 수 있는데 왜 굳이 삽질이나 하는 언더커버 요원으로 바꿔 놓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재해석은 좋지만 재해석할 능력이 없으면 원본 그대로 놔두는 게 낫다.


'던옵저'에서 성급하게 캐릭터들을 한 영화에 쑤셔넣은 건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모두 이미 설명이 필요없는 아이콘 격인 캐릭터들이니, 각본만 좋았다면 영화 시작부터 바로 팀이었어도 상관 없었을 인물들이다. 하지만 기껏 오리진을 생략하고 슬슬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배트맨을 내세웠으면서도 다시 조실부모 트라우마로 이야기가 원점 회귀한 건 역시나 새로운 이야기를 뽑아낼 아이디어가 없다는 뜻이다. 렉스 루터에 새로운 캐릭터성을 부여하지 못하고 만들다 만 가짜 조커로 전락시킨 것 역시 아이디어의 부재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워너는 기억을 하지 않고 반성을 하지 않으며 이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 그간의 똑같이 반복되는 실패와 지금의 문제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평가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덧글

  • 더러운 눈의여왕 2016/08/06 15:52 #

    기왕 로빈 죽음 공인할 거면 조실부모 대신 로빈과
    연결되는 무언가로 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사실 개인적으로 수스쿼에서 제일 이해가 안간 건 로빈
    죽인 공범 만나서도 인공호흡(....)해주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는 배트맨의 대범함.


    그 관대함을 강철남한테도 좀 발휘해줄 것이지.


    (뱃대숩에서 원더우먼과 만나는 장면 보고 캣우먼인 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는 거 보면 캐릭터 개성에 따라 시나리오
    짜는 게 아니라 그냥 자리 생기니까 아무나 데려다 낑겨넣는
    것 같기도 하고 ...)
  • ㄴㅂ 2016/08/06 15:58 # 삭제

    헉, 그 장면 뱃이 먼저 다가간 인공호흡이었군요. 전 그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라 할리 쪽에서 먼저 뱃을 조롱할 의도로 뽀뽀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인지부조화로 인한 뇌내보정이었나봐요
  • lelelelele 2016/08/06 15:58 # 삭제

    말씀하신 캐릭터의 부재에 관한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현 DCEU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이 있길래 디비디프라임쪽의 링크걸어 봅니다.

    http://dvdprime.donga.com/g2/bbs/board.php?bo_table=movie&wr_id=1797999


    제가 글재주가 적어 잘은 표현하진 못하겠는데, 이 글을 보고나니까 워너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무었인지 직접적으로 다가오더라구요. 리뷰에서도 말씀하신 '캐릭터'의 표현에 관한 내용처럼요

    빨리 제프존스와 디씨필름즈가 저스티스리그 이후의 DC히어로무비의 주도권을 쥐고 뭔가 좀 변화를 이끌어내어 줬으면 하는 바램이 드네요.
  • 멧가비 2016/08/06 16:43 #

    링크 글 좋네요. 간만에 참고가 되는 좋은 글 읽었습니다.
  • 풍신 2016/08/06 18:02 #

    솔직히 맨 오브 스틸도 뱃대슈도 캐릭터를 강간해놔서 캐릭터들이 스토리에 희생된 느낌이었습니다. (웃기는게 제게 있어서 뱃대슈의 배트맨이 수어사이드 스쿼드의 악당들보다 사악한 느낌까지 들 정도...까고 말해 뱃대슈의 배트맨은 슈퍼맨을 살해하기 위해 그의 옆에서 모든 것을 서포트하던 집사까지도 속이며, 루터가 흑막이란 것을 몰랐는데도, 크립토나이트를 밀수했다고 해도 멀쩡한 회사를 몰래도 아니고 현관문 다 박살내고 경비들 작살내며 침입해서 크립토나이트를 훔쳐가며, 슈퍼맨 죽이겠다고 범죄자를 협박하고 고문하고 낙인 찍고 밀수꾼들을 죽이는 인간이었으니 말이죠.)
  • 멧가비 2016/08/07 10:13 #

    공감합니다. 제가 그래서 앞에 쓴 글에 언급했죠. 영웅들은 천하의 쫌팽이에 깡패로 묘사해놓고 진짜 악당들은 로맨티스트 순둥이들로 만들어놨으니 세계관 자체의 윤리관이 의심스럽다고요.
  • rumic71 2016/08/06 19:11 #

    * 수트를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보면 제작사의 의도가 보입니다.
    * 원작을 무시하려면 그보다 더 굉장한 걸 만들어놔야죠. 그 점은 본문과 동감입니다.
  • 멧가비 2016/08/07 21:21 #

    제작사의 의도가 보인다라..그건 그렇군요. 다른 누군가한테는 의미있는 것일 수 있겠네요.
  • 나인테일 2016/08/06 20:03 #

    어차피 놀런식 연출 그대로 가는거면 배트맨을 크리스천 베일로 그대로 가는게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캐릭터 소개에 시간 자원 소모가 격심한 DCEU인데 배트맨 캐스팅이라도 본인이 하겠다고 하니 그냥 계속 갔으면 훨씬 절약이 됐을텐데 말이죠.

    크리스천 베일을 잘라버리니 관객에게 배트맨은 또다시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그럼 소개를 다시 해야하고...(....)
  • rumic71 2016/08/06 21:20 #

    놀런식 연출도 아니죠. 업히지도 않고 내치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 dd 2016/08/07 05:04 # 삭제

    크리스찬베일이 하겠다고 했는데 자른겁니까? 이런 ㅆ......
  • 멧가비 2016/08/07 10:17 #

    그래서 던옵저에서는 새 배트맨에 대한 소개가 생략 됐잖아요. 배우가 바뀐 것 치고는 꽤 과감하게 본론부터 들어갔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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