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트렉 더 비기닝 Star Trek (2009) by 멧가비


원래 '스타 트렉' 시리즈의 팬도 아니었으면서 함부로 말해도 되나 싶지만, 또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인 선호도나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선뜻 말할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오래 전 국내 TV에서 방영했던 시리즈가 뭐였는지도 전혀 모를 정도로 무지하다. 피카드 선장의 연대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스타 트렉 시리즈는 흔히 양대산맥의 다른 축으로 꼽히는 '스타 워즈' 시리즈와는 다른 성향과 방식으로 그 역사를 쌓아왔다. 기본 베이스가 극장용 영화들이었던 '스타 워즈' 시리즈와는 달리 이쪽은 애초에 TV 시리즈로 출발했다는 점인데, 이는 현재 미국 드라마들이 갖는 문제점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지나치게 방대하면서도 디테일한 역사일텐데 이것이 어째서 문제가 되느냐 하면, 새로운 작품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야 할 후세대들이 앞선 역사들의 무게에 짓눌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팬덤을 위주로 굴러가는 경향이 강한 서브 컬처 작품군의 경우 설정의 일관성과 지나간 작품들에 대한 지속적인 상기(想起) 등 골수 팬덤의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저예산과 제한적인 스케줄이라는 한계 내에서 제작되는 TV 시리즈의 특성상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보면 극장용 영화 시리즈에 비해 상대적으로 낡은 느낌이 더 강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위에서 양대산맥이라고 언급했지만 사실은 '세계 3대 SF 시리즈'로 꼽히는 '닥터 후' 시리즈를 간과할 수 없다. '닥터 후' 시리즈도 그 근본이 TV 시리즈인데 어째서 닥터 후는 시리즈의 방대한 데이터에 짓눌리지 않고 리부트 없이 현대에도 단일 세계관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 말이다. 디테일하게 파고들면 여러가지 이유들을 찾을 수 있겠지만 가장 알기 쉬운 건, 닥터 후는 "닥터"라는 단 한 명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원맨쇼에 가까우며 원래부터 시즌 끼리의 연결성이 그렇게 유기적이지 않고 다소 느슨한 구석이 있다는 점이다. 닥터 후는 기본적으로 시공간 여행을 주 소재로 삼고 있기 때문에 설정의 어긋남 등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설정으로 메꾸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다. 오죽하면 2천년대의 뉴 시리즈에는 "Timey Wimey"라는 정체불명의 시공간 용어까지 생겼겠는가. "재생성"이라는 설정이 있으니 닥터 역의 배우가 계속해서 바뀌는 것도 시리즈를 위태롭게 하는 요소가 전혀 되지 못한다.


스타 트렉 시리즈도 어차피 진지한 하드 SF와 무관하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우주 SF 모험물로서 닥터 후 보다는 정통에 가까운 느낌이 조금은 더 있다. 몽환적인 판타지에 가까운 닥터 후 시리즈에 비해 쌓인 역사의 무게감에서 자유롭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닥터 후에는 서사 혹은 연대기라는 개념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스타 트렉 시리즈가 정확히 어떤 이유로 리부트(인지 뭔지) 된 건지 알 수도 없고 굳이 알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또한 그렇다면 기존의 시리즈들은 더 이상 역사를 이어나갈 수 없는 건지 어떻게 처분되는 건지에 대한 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스타 트렉 시리즈에 대한 호기심은 있으나 엄두를 내지 못했던 나 같은 팬덤 외부인들에겐 JJ 에이브럼스의 대중 친화적 비전이 담긴 새 영화 시리즈가 2종 오토 자동차처럼 접근성 좋은 상대라는 점이다. 기존의 팬들 입장은 내 모르겠으나, 스타 트렉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어떤 의미에선 숨통이 트여진 기분이진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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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너드 니모이가 "Long Live and Prosper"라고 말하며 벌칸식 인사를 하는 장면에서는 전혀 팬이 아닌 나 조차 괜히 울컥하고 소름이 끼친다. (이게 다 빅뱅이론 때문이다) 트레키들에게 이 장면이 어떤 의미일지는 대충 짐작이 가는 바이다. 아마도 내가 '깨어난 포스'의 한 솔로 첫 장면에서 느낀 것과 비슷한 감정일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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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비아.
영화 초반부의 아카데미 건물 외관이 '스카이 하이'의 학교와 똑같은데, 두 영화 모두 LA 소재의 'Delmar T Oviatt Library' 건물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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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16/08/08 01:47 #

    접근성을 높였다는 점에선 확실히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하는데 제겐 오히려 에피7보다 이쪽이 더 스타워즈 스럽게 느껴져서 좀 메롱한 기분도 듭니다(...)
    근데 그렇다고 원작대로 커크일당이 걸리버 여행기 찍는 컨셉으로 가면 극장영화로는 만들기가 불가능...
  • 멧가비 2016/08/12 14:37 #

    저는 차마 이게 에피7보다 스타워즈스럽다, 라고는 못하겠습니다. 다만 (그게 그 소리지만) 에피7을 이렇게 만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드네요. 에피7 고유의 색깔이 없고 마치 스타워즈를 흉내내는 스타워즈 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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