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워커 Moonwalker (1988) by 멧가비


영화, 드라마, 소설, 음악, 만화 등 사람이 만든 창작물은 기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람에게도 주관적인 평가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 즉, 작품의 완성도가 중요한 요소인 건 맞으나 절대적인 기준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매체의 기준으로 "잘 만든" 작품이 아니어도 좋은 작품일 수 있다. 혹은 좋은 작품이 아니어도 성공한 작품일 수 있다.


이 영화는 극장 영화라는 기준에서는 괴작에 가깝다. 플롯은 형편 없으며 배우는 연기를 더럽게 못하고 심지어 이게 배우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인지 창작물 속 캐릭터의 이야기인지도 구분할 수가 없다. 일말의 언급도 없이 그냥 눈앞에 펼쳐지는 황당한 설정에 대해서도, 본격 SF 영화였다면 용인되기 힘든 수준이다.


하지만 기준을 달리하면 영화도 달라진다. 나는 이 영화가 철저히 기획 의도에 충실한 유료 팬미팅과 같은 영상물이라고 생각한다. 마이클 잭슨이 잘 하는 것은 TV와 공연을 통해 늘 볼 수 있지만 잭슨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귀 기울일 일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물론 잭슨에게는 생전에 자서전을 발표하기도 했지만, 내게는 이 영화가 그의 취향 자서전이다. 뮤지션으로서가 아닌, (뮤직 비디오에 일본 애니메이션 장면을 삽입할 정도의) 한 명의 서브 컬처 팬으로서 그리고 몽상가로서의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관점을 드러내는 그의 "수다"와도 같은 영화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 그는 늘 일관적이었던 "평화와 비폭력"을 여전히 외치고 있지만 그 방식이 다를 뿐이다. 아름다운 멜로디에 메시지를 싣는 대신, 그 자신이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의 슈퍼히어로가 되어 악에 맞서 싸우는 식이다. 그의 춤은 슈퍼히어로의 공격 기술이 되고 그의 얼굴은 트랜스포머 같은 로봇의 베이스가 된다. 약빨고 만든 영화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었는데, 정말 잭슨의 수다를 한참 들어준 뒤 같이 약에 취해 누워있으면 꿀 것 같은 꿈이 바로 이 영화일 것이다.


내러티브를 갖춘 영화로서는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구색 조차 갖추지 못했지만, 영화를 기획할 당시의 마이클 잭슨의 의도는 어차피 그런 게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이 늘 음악을 통해 전달하던 메시지를 자신이 좋아하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또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겸사 겸사 슈퍼히어로도 되고 변신 로봇도 되는 자신의 로망도 가상으로나마 이뤄 본 거겠지. 영화라고 생각하면 티켓 값(당시의 나에겐 비디오 대여료) 날리는 일이지만, 영화 한 편 볼 가격으로 극장의 큰 화면으로 잭슨의 내면적인 이야기도 좀 보고 뭣보다 'Smooth Criminal'의 존나 멋진 뮤직 비디오 풀 버전으로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면 기준에 따라선 굉장한 체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핑백

  • 멧가비 : 마법사 The Wiz (1978) 2020-05-20 01:29:24 #

    ... 보통의 뮤지컬 영화라고 하기엔 이상한 플로우를 타고 있고, '컬트'라 부르기엔 상업적으로 성공한 데다가 주인공이 그 '마이클 잭슨'인 기묘한 영화가 있으니 바로 [문워커]다. 나는 문워커를 참 좋아하는데, 마이클 잭슨의 "웃긴 출연작"으로 늘 문워커만 거론되기에는, 그 영광을 빼앗긴 채 소외되기에는 자격이 충분한 영화가 있으니 ... more

덧글

  • JOSH 2016/08/07 13:07 #

    뮤직비디오 모음집!
  • 멧가비 2016/08/07 17:56 #

    맞아요 그런 느낌이기도 하죠
  • 리퍼 2016/08/07 13:25 #

    꽤 특이한게, 심상은 정말 독특하거든요. 판타지를 집결시켜놓았지만 그걸 두서없이 늘어놓으니 그것도 나름 하나의 기이한 심상으로 남게되는데, 콜라주같달까요.
  • 멧가비 2016/08/07 17:58 #

    맞습니다 실제로 콜라주로 디자인된 뮤직비디오가 초반부에 삽입되었죠. 제도권의 서술 방식을 무시하고 말씀하신 심상만으로 늘어놓은 느낌이 참 좋습니다.
  • 잠본이 2016/08/08 01:44 #

    캡틴 EO와 함께 잭슨횽 2대 수퍼히어로의 위업을 남겼죠...(그게 문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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