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트렉 다크니스 Star Trek Into Darkness (2013) by 멧가비


시트콤 '빅뱅이론'의 레너드 & 쉘든 콤비를 보며 R2D2와 C-3PO 콤비 같다는 생각을 늘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둘은 커크 선장과 스팍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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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재미없진 않다. 그러나 더 재미있을 수 있는데 그걸 반 밖에 못 전달한다. 가장 분량 많은 두 주인공이 참기 힘들 정도로 호감도가 낮은 인물인데다가 그 둘이 절절하게 연애를 하는 영화다. 저 둘만 따로 방 잡으라고 보내버리고 나머지들로만 영화를 채웠다면 훨씬 더 좋은 영화였으리라.


일단 스팍은 결정적일 때 입 열어서 사람 열 받게 하는 엄청난 재주를 가진 우주 요정이다. 기본적으로 호감이 안 가는 인물이라면 나머지 부분에서 설득력을 얻어야 하는데 일단 영화 속에선 그나마 한 게 스팍 프라임이라는 치트키를 불러서 공략집 확인한 것 뿐이다.


커크는 통찰력처럼 보이는 운빨과 휴머니즘 외엔 눈에 띄는 자질이 없다. 오히려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 선원들을 위기에 빠뜨리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여러 사람을 책임져야 하는 우두머리가 가장 해선 안 될 'Being hero' 놀이에 빠져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 둘이 만나, 역시나 납득할 수 없는 브로맨스가 눈물겹게 펼쳐진다. 대체 이 둘은 (관객인)내가 모르는 사이에 언제 이렇게 끈끈해졌나 싶다. 우후라는 그냥 훼방꾼처럼 보이고, 사실 영화는 커크와 스팍의 거대한 사랑싸움일 뿐이다.


스팍과 스팍 프라임의 동시 존재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하지만 동시에 리부트 시리즈를 불완전하게 만든다. 듣자하니 레너드 니모이가 노익장을 과시하는 캐릭터 스팍 프라임은 TOS 시절의 그 스팍이란다. 그렇다면 '비기닝'부터 시작된 새 시리즈는 완벽한 리부트가 아닌 셈인데, 그렇다고 오리지널부터 이어지는 세계관의 연결성도 촘촘하지 않아 조금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추측컨대, 오리지널 팬들 입장에선 자신들이 애정을 쏟아붓던 세계관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오로지 도구로만 쓰이는 것이 불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리부트 이후만 알고 있는 나로선,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잔뜩 있다는 생각에 맘 편히 감상할 수가 없다. 즉, 새로운 관객을 향한 진입 장벽을 영화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다. 이 세계관을 이해하려면 결국 TOS부터 봐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마치 만화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를 접함에 있어서의 고민과 비슷할 것이다.


그에서 발생하는 부차적인 문제는 지나치게 게으른 이야기 전개다. 뉴 스팍이 존 해리슨에 대한 의심에 확신을 갖고 대비책을 마련한 건 스팍 프라임의 귀띔 덕분이었다. 각본 쓰기 참 간편하다.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약간 억지를 부려 비유하자면, '다크 나이트'에 갑자기 마이클 키튼이 나타나서 "얼굴에 하얀 칠한 놈은 건드리지 말라"고 미리 경고해주는 꼴이다.


영화 자체적인 문제점보다 개인적으로 거슬리는 부분은, 마치 영화 전체가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우주급 변명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존 해리슨"은 우생학적 악당으로 평가받곤 하던데, 내 눈엔 미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특히 벤전스 호가 샌프란시스코 한복판에 쳐박히는 모습은 9.11 사태를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는 듯 하다. 애초에 첫 장면부터, 상대적으로 열등한 행성의 유물을 훔쳐 달아나는 것이 사실은 그 행성 원주민들을 구하기 위한 선의라고 외치고 있다. 참 편리한 해몽이다. "자칭" 선의를 베풀면서 눈에 띄면 안 된다고? 이는 내정간섭에 대한 책임 회피가 아닌가.



영화의 온갖 거슬리고 불쾌한 점을 빼고 나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압도적인 악당 캐릭터가 남는다. 컴버배치의 악역은 단지 초인적 육체라는 설정 때문에 돋보이는 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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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입장에서는 스팍을 보면서 '닥터 후'의 닥터가 연상되는 지점이 있다. 인간처럼 생겼지만 상대적으로 고등한 종족인데다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서툰 측면도 있고 뭣보다 맞는 말로 사람 열받게 하는 재주꾼이라는 점은 판박이다. 게다가 리부트 되면서 행성이 멸망해버리다니, '닥터 후' 뉴 시즌이 시작하며 갈리프레이를 멸망시켜 버린 게 안 떠오를 수가 없다.


게다가 본작에서는 스타워즈에 대한 벤치마킹 역시 느껴진다. 커크 선장과 마커스 제독의 관계를 보면서 오비완 케노비와 두쿠 백작의 관계를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모르긴 몰라도 스타트렉 쪽에서 다른 두 시리즈에 끼친 영향 또한 상당하겠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의 역사를 함께 해 온 시리즈들이 서로 영향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