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볼 탐구 14 - 드래곤볼 작품론 [1] 세계관의 본질 by 멧가비


손오공 캐릭터가 이소룡과 성룡의 이미지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등장 인물들이 중국 권법가 풍의 의상들을 입고 나오는 등 전체적으로 중화풍의 시각적 장치를 적극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중국의 고전인 '서유기'를 어레인지함에 있어서의 조화로운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외에도 작품을 살펴보면 쇼 브라더스나 초기 골든 하베스트 등 클래식 권격 영화의 영향을 받은 부분들이 쉽게 눈에 띈다.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작품이 가진 기조(基調) 자체가 중화 무협 혹은 권격물의 정서 아래에서 계속 흘러간다는 사실이다. 특별한 사명을 띄었거나 하는 배경 없이 한 개인이 세계관 전체를 뒤흔들만한 무력을 가진다는 것 부터가 중국식 무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작품 속 모든 결투가 육체의 강함(외공)과 기(내공)를 통해서만 이뤄진다는 점이다. 마족이라고 해서 특별한 저주의 주술을 쓰는 것도 아니고 외계인이라고 해서 테크놀러지를 앞세우지도 않는다.
(재미있는 건, 외계인이라고 특별히 지구보다 월등한 테크놀러지를 가진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상대가 마족이든 외계인이든(어차피 마족도 결국은 외계인) 이들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권법가들이며 때로 주인공들은 훈련을 통해 혹은 특별한 계기를 통해 힘을 기르기도 하고 합체, 변신 등을 한다. 무협 세계관에 비춰보자면 이는 결국 금강불괴의 수 많은 변형들이다.


남녀간의 로맨스나 가족 이야기 등 드라마 파트는 최소한만 구현하고, 강한 자가 정의를 논하는 비정한 세계라는 점도 본 작품을 무협 세계관으로 보이게 하는 강한 요소다. 한 때 "오공 불량가장 설" 같은 엉뚱한 이야기가 돌기도 했는데, 이는 작품의 특성이나 장르의 논리에 대한 이해 없이 무리하게 현실에 대입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드래곤볼은 이른바 "점프 식 배틀물"이라는 포맷을 정립한 선구자적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드래곤볼을 평함에 있어, 문학적 혹은 예술적 딜레마에 빠지지 않고 오로지 엔터테인먼트에 집중한 가장 훌륭한 결과물의 사례로 꼽는다. 본작에서의 스토리라는 건 유원지 어트랙션에 붙은 약간의 설정처럼 얇고 가볍다. 오로지 "결투"라는 키워드를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으며, 그에 수반되는 작화와 연출 등으로 인해 독자는 마법같은 몰입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대결의 흥분을 돋우기 위한 최소한의 스토리, 그리고 정신 차려보면 손에는 피규어가! 이는 드래곤볼이 서유기나 무협 세계관 외에도 강하게 영향 받은 레퍼런스 중 하나인 일본식 특촬물의 성향과도 일치하는 부분이다.


덧글

  • 5thsun 2016/08/25 22:54 #

    부르마 일가에서 천재들이 갑자기 나와서 지구측 기술력이 폭증 중인거지

    외계인 기술력이 넘사벽은 맞습니다.

    아마 부르마 일가가 그 세계의 특허와 기술과 화폐의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을 겁니다.

    단지 기술력으로 커버가 안될 수준으로 싸움 실력이 폭증한거죠.
  • 멧가비 2016/08/26 01:17 #

    네 바로 그 부르마 가족의 기술력을 지구의 기술력으로 상정하고 쓴 글입니다. 부르마 가족이 지구인이니 그럼 안 될 이유가 없지요.
    작중 외계인들 고유의 기술력으로 눈에 띄는 부분은 어택볼 등 행성간 이동 수단이나 프리더의 부하들이 썼던 빔 병기 등이 있는데, 부르마는 타임 머신을 만들어낸 걸 고려하면 이동 기술 역시 분야가 다를 뿐 넘사벽은 아니게 되고 병기 개발 역시 게로 박사의 인조인간 후기 모델들이 있으니 부르마 일가로 한정짓지 않아도 지구가 앞서는군요.
    스카우터나 어택볼, 전투복 등을 부르마가 약간의 분석 후 쉽게 흉내낸 걸 보면 아이디어의 차이일 뿐 기술력으로 밀리는 것도 아니고, 각자 환경이나 관심 분야에 맞게 특화된 분야가 있을 뿐 작중의 외계 기술이 지구를 압도한다고는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뭣보다 본문의 주제는 외계 기술력 얘기가 아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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