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인의 온화한 일본인 12人の優しい日本人 (1991) by 멧가비


시드니 루멧 연출, 헨리 폰다 주연의 57년 영화(이하 원작) [12인의 성난 사람들]이 TV 드라마 작가이자 무대 극작가였던 미타니 코키에 의해 오마주되어 1990년 연극 무대에 올려진다.(정식 리메이크가 아닌 점이 껄끄럽지만 일단 넘어가자) 이를 각본 삼아 1년 후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영화인데, 원작이 가진 기본적인 설정과 포맷은 남아있으나 다소 무거웠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미타니 특유의 소동극적인 분위기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원작이 미국 사회에 대한 고찰과 배심원 제도 그 자체를 두고 다소 묵직하게 끌어간 이야기였다면 이쪽은 일본 사회를 구성하는(협의하고 결정하는) 인간 군상들의 캐리커처와도 같다. 그와 동시에 일본 사회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는데, 원작과 달리 12인 중 가치 있는 이야기를 던지는 사람은 일부 소수이며 그 중 최초로 이의제기를 한 배심원 둘은 각각 개인감정으로 폭주하거나 선민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원작의 헨리 폰다 역할을 하는 건 배심원 2호. 원작을 비튼 설정의 대표적인 인물이기도 한데, 원작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혹을 먼저 제기했던 헨리 폰다 캐릭터와 개인감정으로 끝까지 아집을 버리지 않던 리 J. 콥의 캐릭터를 합쳐놓은 인물이다. 원작에서 가장 대립각을 세웠던 두 인물의 내면을 동시에 가졌다는 점에서 재미있다.


영화 도입부의 배심원들은 제목처럼 적당히 '야사시이(優しい)'하게 피고에게 무죄를 던져주고 해산하려 한다. 그러나 이 배심원 2호의 합리적 의혹을 통해 영화가 시작되는데, 결과적으로는 2호가 개인감정에 사로잡혀 깽판 쳤을 뿐임이 드러나지만 2호의 그런 독고다이가 무가치했다고는 절대 말 할 수 없다. 최초로 합의 본 무죄는 배심원들이 그저 '야사시이'함을 드러냈을 뿐인 적당주의에 근거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회귀한 무죄는 배심원들 모두가 합리적 의혹을 거치고 난 이후의 무죄라는 점이 중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원작처럼 'angry'가 아닌, '優しい'가 시사하는 바가 드러난다. 모난 돌이 정 맞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맞게 배심원들 중 11인은 최초에 '적당히 좋은 게 좋은' 분위기로 무죄 합의를 보려했다는 점이다. 2호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최초로 자기 목소리를 내지 않으려 했다는 점.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자리에서 한가하게 음식 얘기나 하면서 적당히 때우려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토론이 끝난 후 배심원들은 반어적인 의미에서가 아닌, 정말로 야사시이한 정서를 머금은 채 퇴장한다.


상기한 바와 같이 원작과 다른 요소들이 재미있다. 본작에선 피고가 등장하지도 않고 법정도 비춰주지 않는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분위기는 조금 가벼운데, 원작의 도입부에 강렬한 인상을 준 피고 소년의 복잡한 눈빛 같은 것이 없다는 건 두 영화의 차이를 결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다. 단적으로 이 영화는 원작의 주머니 칼 대신 레귤러 사이즈 피자를 들고 들어온다.


쟁점이 된 사건이 소년의 부친 살해 사건이 아닌, 아침 드라마(朝ドラ)의 도입부 설정으로 쓰일 법한 치정극이라는 부분. 피해자는 아동 학대 부친 대신 서른 살의 기둥서방이라는 부분 등 일본의 정서에 맞춰 로컬라이징 된 설정들을 비교하는 소소한 재미들이 있다. 야끼우동이 맛있는 이자까야에선 술을 마시지 않는다든지, 취한 척 하고 본심을 말한 경험이 실마리가 된다는 점 등은 이 영화의 "일본스러움"에 마침표를 찍는다.




연출 나카하라 슌
각본 미타니 코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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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멋진 악몽 ステキな金縛り (2011) 2017-11-04 15:15:14 #

    ... 마찬가지로 미타니 코키 각본작인 [12인의 온화한 일본인들]과 어떤 의미에서는 같은 맥락에 놓여진 영화다. 일본인이 상상할 수 있는 "판결제도에 대한 실험"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12인...]이 일본식 소심 ... more

덧글

  • 루트 2016/09/05 16:05 #

    12명의 성난사람들 : 저런 무뢰한에겐 사형을 내려야 해!
    12명의 온한사람들 : 사형이라니 너무하잖아
  • 멧가비 2016/09/05 19:15 #

    두 영화의 도입부를 적절히 요약해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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