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 羅生門 (1950) by 멧가비


등장 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진술을 하는 식의 연출 기법을 상징하는 말이 된 그 유명한 제목 라쇼몽, 나생문. 요즘 애들은 롤로노아 조로 필살기 이름인줄만 알겠지. 늙은 나는 기스 하워드를 먼저 떠올린다.


무사와 아내는 산 길을 지나는 중에 산적의 눈에 띄여 봉변을 당한다. 무사는 죽고 아내는 범해진다. '사실'은 여기까지. 거기에 각기 달리 주장하는 '각자의 진실'이 살 붙는다.


산적은 비겁하고, 무사는 비열하고, 아내는 비참하며, 나무꾼은 비굴하다. 그들은 각기 자신의 비겁함, 비열함, 비참함, 비굴함이 들킬까 자신을 보호할 살을 보태어 진술한다. 영화는 '사실'과 '인지'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말하는 사실과 인지의 갭에 숨은 것이 의도적인 거짓말일지, 본능적인 방어기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차이 또한 무의미할 것이다.


영화는 그 변명쟁이들을 비난하지 않고 감싸주지 않는 관조적인 시선만을 유지한다. 관객은 감정이입이라는 오류에 빠지지 않고 영화가 말하는 거짓의 본질을 관찰할 기회를 얻는다. 거짓이 작동하는 매커니즘을 관찰하는 구경꾼 혹은 감시자가 된다.


영화는 소설 '라쇼몽'보다는 같은 작가의 '덤불 속 (藪の中)'을 더 직접적인 원작으로 삼고 있는데, 이 형국이 마치 영화 속 인물들의 진술과도 같다. 그들의 거짓 안에 진실이 없었다 할 수 없듯이, 이 '덤불 속' 영화 안에 소설 '라쇼몽'이 있긴 있으니까.


50년대의 흑백 필름인데도 한 낮의 쨍한 햇살과 억수같은 비를 표현하는 기법이 멋지다. 진실을 궁금하게 만드는 스토리 외에 기술적인 볼거리가 좋은 영화다. 특히 산적과 무사의 진짜 같은 찌질한 싸움은 필견.



연출 각본 쿠로사와 아키라




덧글

  • 解明 2016/09/08 20:13 #

    처음 영화 봤을 땐 미후네 도시로의 화려한 칼부림을 기대했는데, 그 기대를 아주 훌륭히(?) 무너뜨린 진흙탕 싸움이라서 기억에 깊이 남았습니다. 제 마음속에서는 <품행제로>의 류승범 씨와 함께 진흙탕 싸움 양대 산맥입니다. ^-^;;;
  • 멧가비 2016/09/09 00:21 #

    그 시절 일본 사무라이 챤바라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리얼리즘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을 겁니다. 닌자 영화가 홍콩 액션에 가까웠던 것 과는 별개로요. 기억이 맞다면 미후네 토시로 작품 중 미야모토 무사시 시리즈에서는 액션이 꽤 괜찮았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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