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전트빌 Pleasantville (1998) by 멧가비


90년대 아이들이 50년대에 떨어진다. 하지만 그 50년대는 진짜 현실의 50년대가 아니다. 이는 유사 시간여행 판타지다.


일상을 살아가던 쌍둥이 남매는 50년대 TV 시트콤이라는 판타지의 영역에 떨어진다. 그리고 그 흑백 시트콤인 '플레전트빌'은 50년대 보수적인 정서 그 자체로 빚어놓은 것만 같은 세계관이다.


쌍둥이 남매 중 방종하던 제니퍼는 마치 감옥에 갇힌 재소자와 같은 표정이지만 원래 '플레전트빌'의 열혈시청자였던 데이빗은 마치 신의 성전에 들어간 신도와도 같은 황홀함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제니퍼는 빈 캔버스에 붓질을 하듯 텅 빈 연속극 캐릭터인 플레전트빌 사람들에게 있어 쾌락의 선지자가 되며, 데이빗은 시청자로서가 아닌 내부자로서 본 플레전트빌은 사람의 감정마저 제한된 그곳이 감옥보다 더 나쁜 감옥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시작도 달랐고 과정도 달랐지만 어쨌든 쌍둥이는 흑백 연속극 세상에 색깔을 찾아준다. 쌍둥이로부터 쾌락을 느낄 자유, 각본에서(세상의 통제에서) 벗어난 행동을 할 자유를 배운 플레전트빌 사람들은 잿빛 얼굴 대신 살구빛 볼과 붉은 입술을 갖게 된다. 플레전트빌 사람들에게 저 쌍둥이는 '매트릭스'의 네오였다. 현실 세계의 90년대 말 현실의 미국은 뮤지션들에 대한 검열 논쟁으로 시끄럽기도 했다.

(흑백의 어른들이 탄압하려 했던 총천연색 새로운 세대들은 어떤 의미에선 "유색인종"이기도 하다!)


영화는 결국 플레전트빌을 총천연색으로 물들이며 갈등을 화합하고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러나 그 해피엔딩에 엄마는 떠나고 데이빗과 제니퍼의 "가족"은 사라진다.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에 있어서는 가족주의조차 벗어던져야 할 대상일 수도 있다는, 미국 영화로서는 낯선 메시지. 8, 90년대의 가족주의는 이미 낡은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아뿔싸, 공교롭게도 영화가 개봉한 98년은 미국 대통령조차 이혼당할 뻔 했던 해가 아닌가.



연출 각본 개리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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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OSH 2016/09/09 15:50 #

    주연이 아마 토비 맥과이어 였죠?
    내용도 재미있고,
    이 영화 버전의 Across the Universe 도 참 좋았습니다.
  • 멧가비 2016/09/10 16:30 #

    영화 도입부에 토비 맥과이어가 연기한 어떤 장면이 '스파이더맨'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된다는 거 아시나요.
  • JOSH 2016/09/10 17:44 #

    헐 그런가요.
  • 닛코 2016/09/10 16:07 #

    이거 참 재미있게 봤어요. 엄마가 욕조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최근에 마블에서 <플레전트 힐>이라는 이름으로 차용하기도 했죠.
  • 멧가비 2016/09/10 16:31 #

    그 엄마의 아들이 나중에 스파이더맨이 된다는 걸 생각하면 재미있게 얽힌 인연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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