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 キュア (1997) by 멧가비


최면 살인마인 마미야 쿠니히코는 최면의 대상들에게 '넌 누구'라는 질문을 반복해 던짐으로서 인간이 가진 "자기 소개"의 근원적 공포와 불안함을 공격한다. 이는 근본적으로 자신을 감추는 일본 특유의 "다테마에-혼네" 문화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며, 경제의 거품이 꺼진 후 삶의 방식이 송두리째 바뀐 "잃어버린 10년"이 주는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혼란을 반영한 은유일 수도 있다.


마미야가 최면의 매개체로 사용하는 것은 지포 라이터와 흐르는 물, 즉 불과 물이다. 불과 물은 공통적으로 생명을 상징하는 개념인데, 생명의 개념을 이용한 최면으로 생명에 대한 개념을 잃게 만드는 공포 연출은 의미심장하다. "잃어버린 10년"의 경제 불황에 높아진 자살률, 경제의 논리로 생명을 포기한 사람들이 이슈가 되던 당시 시대상을 떠올릴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영화는 "생명의 근원과 의미는 생명 그 자체"라는 격려처럼 읽히기도 한다. 타카베 형사가 마미야를 만난 이후 "아내의 자살" 환영을 겪음으로써 이야기가 국면을 전환했으며 마지막에 타카베를 끝까지 몰아부쳐 결국 마미야를 죽이게 만든 동기 역시 친구인 사쿠마의 자살이었다는 점은 곱씹을 여지가 있을 것이다.


영화에선 샤를르 페로의 '푸른 수염'이 상징적인 레퍼런스로 인용되는데, 동화 속 푸른 수염의 왕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문곡직 잔혹하게 아내들을 살해한 광인이다. 영화의 마미야는 상대방의 말에 대답을 하는 대신 자신의 할 말만 이어감으로서 최면을 완성하고 살인을 디자인한다. "소통의 부재"에 대한 경고는 영화의 또 하나의 중요한 테마이기도 하다. 주인공인 타카베 형사 역시 치매 아내에 대한 복잡한 내면을 마미야에게(혹은 외면하려던 자기 자신에게) 들킴으로서 소통의 부재로 이미 고통을 겪고 있음이 밝혀진다.


마미야가 무서운 것은 그 능력도 능력이지만, 스스로 뚜렷한 목적이나 악의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도 있다. (기억상실 증세가 진짜라면)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조차 없으면서 입만 열면 최면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마치 숨 쉬는 그 자체가 살의인 것만 같은 "태생적인 악"이 바로 영화 속 마미야의 모습인데, 이는 함축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많은 악을 배출하는가에 대한 질문 말이다.



연출 각본 원작 쿠로사와 키요시



덧글

  • blackace 2016/09/11 10:09 #

    혼마에가 아니라 혼네겠죠
  • 멧가비 2016/09/11 11:13 #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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