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행 (2016) by 멧가비



열차에 탄 인물들은 크게 나누면 세 개의 세대로 구분할 수 있다.


중년. 노년 그리고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미성년자 세대. 경제와 성장의 논리에 도덕을 잃고 타락한 현 중년 세대와 그를 바라보는 위 아래 두 세대의 이야기가 되는데, 결국 타락한 세대의 몰락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는 다른 형태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김의성은 나름대로 자수성가한 386 세대 출신 중년이다. 초반부의 행동들은 냉혹하지만 동시에 합리적이라 할 수 있었으나 공유를 감염자로 몰아간 이후부터 그는 명백히 이기주의를 넘어 악이다. 처음에 공유를 부추겨 마동석과 정유미가 들어올 문을 닫게 한 것도 김의성이었다. 공유는 이기주의 까지는 가지 않은 차가운 개인주의 영역에 있는 인물로, 사람을 '개미'로 지칭하며 경제 논리로 세상을 본다.  김의성에 물들 뻔 했으나 도덕을 회복하고 거의 마지막까지 살아 남은 것은 다음 세대와의 연결고리에 대한 희망이다.


할머니 자매는 경제활동에서 물러난 "은퇴한 세대"다. 아마도 농경시대에 전성기를 거쳤을 그들은 자신들과 다르게 세계관을 쌓은 중년들을 바라보며 탄식한다. 동생 할머니가 탄식하던 "다 퍼주고 바보같이 고생만 한" 그들은 혼자 살아남기 위해 남들을 밟고 오르던 현 중년 세대를 인정할 수가 없다. 유일한 선택지가 방주를 뒤집는 것 뿐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아직 세상에 덜 나온 세대들은 순수하다. 고교 야구부원 소년은 좀비가 되어버린 친구들이 자신을 해치려 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공격하지 못한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군대의 사살명령을 철회하게 만든 수아는 그야말로 아직 세상에 발을 담그지 않은 떡잎이다. 정의로운 마동석과 선한 정유미는 그들 자체의 세대보다는 태아를 담는 그릇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이야말로 방주 속 진짜 방주였던 셈이다.


세대를 구분 외에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집단주의적 광기에 대한 은유다. 군복 입은 좀비들이나 "오 필승 코리아"에 환장하고 달려드는 좀비들의 모습 등은 노골적인 비판이다. 빠르게 전염되고 쉽게 퇴치할 수 있는 설정부터가 공 따라 우르르 몰려가는 한국 특유의 동네 축구 근성을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시각적으로는 객실 좌석이라는 엄페물, 청각적으로는 좀비들을 자극하는 터널 등의 장치들을 통해 열차라는 환경을 상당히 기술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이런 명쾌한 미장센들은 영화의 속도감을 더한다. 시도만 좋은 수준을 넘어, 어디에도 내놓을 수 있는 한 편의 장르 기성품을 완성함으로써 첫 한국산 메이저 좀비 영화의 표준을 제시한 점 높이 살 만하다. 이제 한국도 좀비 호러의 불모지가 아니다.



연출 각본 연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