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지러울 란, 제목이 뜻하는 바, 어지러운 것은 열도의 영토 싸움의 정세도 가족의 유교적 질서도 아닌 노쇠한 다이묘의 성긴 통찰력이었다. 난세를 헤쳐 온 늙은 권력자의 눈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종자로 붙어있는 익살꾼조차 훤히 보고 있는 것들을 마치 하늘에 구름 끼듯 흐려진 통찰력으로 인해 모두 놓치고 만다. 큰 아들 타로는 우유부단했으며 둘째 지로는 피를 보는 성정이었다. 각각 노란색, 빨간색의 기치(旗印)는 그들의 그러한 성품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늘색 기치를 내세우는 셋째 사부로는 세 아들 중 유일하게 가식 없는 대장부였으나, 새파란 하늘에 적란운이 뭉글거리는 아름다운 도입부 장면은 사부로의 앞날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며칠을 꼬박 기다리며 영화 스탭들을 고생시키며 찍었을 게 뻔한 그 (고요하면서도 아찔한) 장면이야말로 영화 전체의 함축이다.
쿠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중 스케일만 따지자면 더 이상이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떤 필모의 것들보다 작디 작다. 늙어 혜안을 잃은 노부(老夫), 치마폭에 놀아난 큰 아들과 그저 "삐쳐서" 싸움을 시작한 둘째 아들. 이 세 남자가 벌이는 공성전은 결국 소갈딱지 좁은 남자들의 머리끄댕이 싸움에 지나지 않았다. 으리으리한 성을 짓고 황금 비단으로 옷을 해 입으며 권세를 뽐내어 호걸이라 칭송 받은 들 뭘 하나, 제 가족에게 밥 한 술 양보할 배포 조차 없거늘.
연출 쿠로사와 아키라
각본 쿠로사와 아키라, 이데 마사토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 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