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인공인 좀도둑 혹은 카게무샤는 그 자신의 말마따나 작은 그릇의 인물이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뭐가 두렵겠냐 싶으면서도 당대의 호걸인 타케다 신겐의 디코이로서 일생을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여기서의 공포는 단순하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으로 산다는 공포보다 더한 것은 타인이 되어, 내가 아닌 채로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게무샤는 결국 좀도둑이라는 "이드(id)"를 감추고 100퍼센트 카게무샤라는 "초자아"만으로 타케다 신겐이라는 "자아"를 형성하기를 선택한다. 고통스러운 일일 것임을 스스로도 알았으나 어찌됐건 그 길을 가기를 선택한 것.
카게무샤는 적절한 임기응변 등으로 거의 완벽하게 타케다 신겐 "역할"을 수행한다. 현실에도 가식이 오래되면 그게 곧 성격이라는 말이 있듯이, 악몽같은 중압감을 이겨내면서 신겐 역할에 충실했던 그는 총알이 눈 앞으로 지나가는 진짜 전장을 겪은 후 가신들로부터 "달라졌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진짜 신겐에 완벽히 동화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산의 정상에 서면 그 다음은 내리막이듯이, 신겐의 대리자가 신겐에 완벽히 동화됐다고 스스로 믿는 순간 이어지는 것 역시 내리막이다. "역할" 수행을 넘어 신겐으로서의 "잘못 된" 자의식이 생겨버린 것. 절대 타지 말라고 주의를 받던 신겐의 검은 말을 탔다가 낙마한 후 거짓말처럼 토사구팽 당한 카게무샤는 이제 본인의 인생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애초에 "그림자"에 불과했던 그는 빛을 잃고 원본을 잃은 순간 사실상 그 그림자조차 조금씩 옅어지는 중이었을 것이다. 단지 그 스스로 맺고 끊을 타이밍과 그 방법을 몰라서 타의로 내몰렸을 뿐. 사람의 "자아"는 기본적으로 "고체"에 가까울 수 밖에 없다. 카게무샤는 좀도둑이었던 자아를 신겐이라는 그릇에 맞는 물로 녹여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릇을 잃은 물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진 뻔하지 않은가.
연출 쿠로사와 아키라
각본 쿠로사와 아키라, 이데 마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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