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 天国と地獄 (1963) by 멧가비


제화(製靴)업체의 중역인 곤도는 거만하고 야심만만한 기업가지만 동시에 평판 좋은 장인(匠人)이기도 하다. 그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단지 상대적인 부를 누리고 있었다는 점 뿐인데, 그저 언덕 위에서 빈민들이 올려다 보는 위치에 살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는 "천국"의 문턱에서 끌어 내려진다.


곤도의 저택이 올려다보이는 빈민가의 타케우치는 자신의 처지를 지옥에 빗댄다. 그러나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듯 삶의 고됨을 토로하는 그의 직업은 인턴 의사. 시대적인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그 삶을 지옥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는 담담한 척 자신의 범죄 동기를 밝히기를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운 삶"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흉악범들이 간혹 그렇듯, 마치 "아기 분유를 훔친 미혼모"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연민으로 스스로를 대하는 타케우치는 자신과 전혀 무관하게 정직하게 부를 축적한 곤도의 눈 앞에 기어이 지옥 문을 연다.


곤도의 저택에서 시작한 영화는 타케우치가 범죄를 모의한 패전 이후 일본의 피폐해진 삶 속으로 들어가, 종국엔 가장 밑바닥까지 시선을 낮춰 전후 복구 과정에서의 양극화를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미군들이 주색에 취해있는 환락가의 뒷편 마약굴엔 산송장들이 자빠져들 있다. 진짜 지옥은 따로 있었다. 지옥의 삶을 자처하는 타케우치가 마약굴의 정키를살인의 모르모트로 삼은 시점에선 일말의 동정의 여지 마저 잃는다.


전후 일본의 사회 계급적 혼란을 묘사하는 사회적인 메시지 뿐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영화다. 흔히 색채의 기교로 회자되는 것은 쿠로사와의 80년대 필모 이후 후기작들이지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컬러가 들어간 장면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보면 이미 일찍부터 색을 다루는 센스를 확인할 수 있다.


딜레마에 빠진 곤도의 문제가 일단락 되고 극의 흐름에서 빠지고 나면 심리극이었던 영화는 드라이한 정통 수사물로 탈바꿈한다. 그저 수사 기계 쯤으로 몰개성하게 묘사될 수도 있었을 경찰들의 경우엔, 인간적인 태도와 자조적인 농담 등 캐릭터 묘사가 게으르지 않은 편이다. 덕분에 영화는 깔끔하게 두 파트로 나뉜 것 같은 구조임에도 그 두 부분이 결코 이질적이거나 튀는 느낌은 없다.


타케우치가 체포되기 직전 장면에 깔리는 음악은 저작권 문제가 아니었다면 원래 'O Sole Mio'가 아닌, 엘비스 프레슬리의 'It's Now or Never'가 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노랫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언어유희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아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연출 각본 쿠로사와 아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