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더 다크 Don't Breathe (2016) by 멧가비


금형 잘 뽑힌 고가의 프라모델 같다. 최소한의 재료들이 군더더기 없이 기가막히게 맞물려 돌아가는 경제적인 공포 영화다. 가정사가 묘사되어 동정의 여지가 있는 호러 퀸, 주인공을 위해 희생할 게 뻔한 제 1남, 꼴통짓 하다가 판 벌리고 제일 먼저 죽을 것 같은 제 2남 등, 등장과 동시에 역할을 짐작할 수 있는(모험하지 않고 제 역할에만 충실한) 스테레오 타입의 도둑들 캐릭터는 눈 먼 괴물이 활개칠 수 있는 공간을 깔끔하게 열어준다. 뻔하다기 보다는, 남의 무대에서 쓸 데 없이 자기 목소리 내지 않는 듯한 느낌에 가깝다. 스테레오 타입들이 문을 열었으니 눈 먼 노인이라는 단 한 가지 변수가 온전히 원맨쇼에 가깝게 극의 긴장과 서스펜스를 이끌어 가는 것.


영화는 한 마디로, 뎀딜러 없이 저렙 도둑 셋이 마왕이 사는 던전에 기어들어갔을 때 벌어질 일이다. 용자도 전사도 아닌 놈이 주제 모르고 전설의 검을 장비했는데 그 마저 마왕한테 빼앗긴 셈. 다른 클래스도 아닌 도둑이 자기 장비를 뺏기다니, 사실상 그 순간 게임 끝난 거지.


필연적으로 한 쪽에 두게 되는 동정적 시선 그리고 혐오의 시선을 마치 탁구하듯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각본이 영리했다. 젊고 건방진 세 도둑은 잠에서 깨어난 마왕의 사냥감으로 포지션 변경되고, 늙은 상이용사는 마왕이 되었다가 자식 잃은 부모를 거쳐 creepy한 강간범이 된다. 노인을 광기로 몰아넣은 것이 그의 주장대로 약자의 편을 들지 않는 법 체계 때문인지, 혹은 이전부터 광기를 품고있던 사람에게 불행한 발화점이 주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광기의 근원이 미지의 영역일 때 더 무서운 게 바로 이런 경우.


차라리 육체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뻔한 강간범이었다면 덜 무섭고 덜 불쾌했을 일이다. 육체적인 접촉조차 하지 않아서 역으로 더 불쾌한 이해불가의 초현실적 강간, 그것을 멈추지 않겠다 선언하는 침묵. 그 마지막이 소름끼친다.


주인공 록키가 이겨낸 끝판왕은 마왕같은 노인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왕의 성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면서도 포기하지 못했던 돈가방, 그 돈가방을 필요로한 이유였던,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했던 디트로이트가 록키에게는 마왕보다 더 지긋지긋한 끝판왕이지 않았을까.



연출 각본 페데 알바레즈
제작 샘 레이미



핑백

  • 멧가비 : 2016년 극장 영화 베스트 2016-12-07 17:18:54 #

    ... 꼽는다. 5. 터널 세월호 참사를 되새기게 하고 풍자의 형태로 정부를 비판하는 이야기로서의 가치도 있지만,반면에 하정우 식 유머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기도 한다. 4. 맨 인 더 다크 기대 안 하고 봤는데 놀랍도록 재미있었던 영화로는 이게 1위.압도적인 공포와 불쾌함이 공존하는 던전 호러. 3. 클로버필드 10번지 이건 또 다른 의미로 ... more

덧글

  • 미사 2016/10/12 00:22 #

    저도 봤는데 참 게임처럼 만든 영화더라고요. 특히 노인의 집에 들어가자마자 도구를 훑는 카메라는 마치 아이템 획득 찬스;; 퀘스트를 보는 것 같았어요.
    스릴러는 좋아하는데 이렇게 기계 같은 게임 캐릭터들의 소모가 심한 영환 줄 알았으면 안봤을 것 같아요.
  • 멧가비 2016/10/12 02:25 #

    역시... 그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