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 케이지 시즌1 (2016) by 멧가비


데어 데블, 제시카 존스와는 또 다른 느낌의 하드보일드. 아예 루크 케이지의 등장 초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은 생각지도 못한 초강수가 아닌가. 블랙스플로이테이션에 가까운 장르를 21세기 인종차별 문제와 절묘하게 섞은 각본이 대단하다.


할렘의 정서를 섬세하게 잘 묘사한 것은 단순히 인물들이 할렘 출신 유명한 흑인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는 부분만은 아니다. 데어 데블의 윌슨 피스크나 제시카 존스의 킬그레이브처럼 고정적인 끝판왕을 투입시키는 대신, 마치 사망탑처럼 단계적으로 깰 수 있게 설계된 악당 출연 구조 안에서 할렘의 정서가 느껴진다.


코튼마우스와 머라이어는 각각 할렘 출신 범죄자의 돈과 명예에 대한 욕망을 상징한다. 코튼마우스는 전형적인 할렘 깡패의 우두머리 캐릭터인데, 좌절된 예술가로서의 꿈과 함께 깡패 특유의 자존심을 감추지 않는다. 머라이어는 지역 정치가로서 할렘 특유의 공동체 의식 등 집단 정서를 교묘하게 이용할 줄 아는 권모가에 가깝다. 둘 모두 정점에 선 위압적인 악당이라기 보다는, 그들부터가 더 위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그러나 역시나 할렘의 흑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벗어나지 못한 현재진행형 악당이었다.


끝판왕으로 셋팅된 다이아몬드백은 조금은 성격이 달랐다. 루크 케이지와 이복 형제로 각색된 다이아몬드백이 가진 원한과 욕망은, 공동체 정신 이면에 발생할 수 있는 좁은 사회 특유의 모순에서 기인한다. 루크와 다이아몬드백의 악연이 시작된 곳이 지역 교회라는 점은 그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데어데블, 제시카 존스보다 심리적 밀도는 조금 옅은 듯 하지만 사회적인 메시지는 더 뚜렷한 어조인 점이 맘에 든다. 루크 케이지를 제외한 조연들은 원작에서 옮겨왔으나 사실상 오리지널 캐릭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각색된 면이 있는데, 재해석과 원작 존중의 사이에서 균형 역시 잘 맞추고 있더라.


클레어 템플 캐릭터의 비중이 높아짐으로 인해 디펜더스 프로젝트가 어떤 식으로 구체화될지 조금 그 윤곽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조용히 묻어 살고싶어 했던 루크 케이지는 오히려 현재 공개된 디펜더스 멤버들 중 세상에 가장 노출이 많이 되었는데, 시간대 순서상 소코비아 협의안 전인지 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그 여파를 피하기는 힘들게 생겼다. 만약 디펜더스 시리즈가 영화 시리즈에 편입되어 소코비아 이후의 세계관을 겪게 되지 않는다면, 말만 같은 MCU지 사실상 별개의 세계관으로 인식하고 보는 편이 옳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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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의 파트너로 나온 형사, 낯이 익다 싶었는데 '펄프픽션'에서 사무엘 L. 잭슨한테 햄버거 뺏겼던 아저씨다. 닉 퓨리랑 만나는 장면이 있었더라면 재미있었을텐데.


4회는 회차 전체가 '킬빌'의 오마주이던가 최소한 영감 정도는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키도가 오지심장파열술을 배우던 장면과 땅 속에서 기어올라오는 장면의 교차 편집, 그 플롯을 거의 그대로 갖다 쓴 것 같다.




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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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삐돌이 2016/10/12 10:15 #

    어떤 능력자분이 루크 케이지를 패밀리 매터의 오프닝으로 편집했더군요... 심심하시면 꼭 보시길.. 그나저나 전 제시카 존스도 끝내야 하고, 루크 케이지도 봐야하고, 에오쉴도 따라잡아야 해서 볼 게 많네요. 멧가비님은 대단하시네요. 스몰빌에, 에오쉴, 버즈 오브 프레이 등 희귀한 것도 다 보시다니. 하여튼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글 쓰는 재주가 개인적으로 좋아서 매일 들르고 있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0gpED0Z57RU
  • 멧가비 2016/10/12 19:10 #

    영상 잘 봤습니다. 패밀리 매터는 잘 모르는데 80년대 시트콤 느낌이 제대로 나긴 하네요. 누가 만든 건지 거 사람 참 센스 한 번 맘에 드네요.

    재미있게 읽어주시는 것도 감사합니다. 스몰빌, 버즈 오브 프레이는 한참 미드 보기 시작할 때의 입문작에 가깝습니다. 스몰빌 때문에 미드라는 걸 보기 시작했죠.
  • leelee 2016/10/12 20:49 # 삭제

    제시카 존스때도 그랬는데 루크케이지의 조금은 빈약한(?) 액션씬 덕분에 좀 실망하시는 분들도 종종 계시더라구요. 근데 이번 루크케이지를 보고 느낀게 마블스튜디오가 제작지휘하는 영화들도 그랬지만, 마블TV부서도 확실히 작품마다 컨셉을 달리해서 스트리트 히어로들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려는 것 같더라구요. 장르라고 해야하나.. 그런 것도 작품마다 차별화 하기위해 노력한 흔적도 많이 보이구요.
    확실히 마블 본가쪽은 스튜디오나 TV부서 모두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 같아요. 그리고 캐릭터 위주로 묘사되는 것도 좋구요.
    애초에 캐릭터 자체가 피지컬위주로 밀어붙이는 능력이고, 강력한 캐릭터이다 보니 오히려 다른 요소에 더 주제를 맞춘게 나름 괜찮은 선택같아 보였습니다. 모든 넷플릭스 단독 타이틀이 데어데블 ver2 가 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이번에 뉴욕코미콘에서 공개된 아이언피스트 예고편을 보니까 이쪽은 확실히 액션에 집중하는 면이 보이는게, 제시카존스와 루크케이지가 드라마적인 요소에 집중했다면 데어데블과 아이언피스트는 액션의 밀도를 확실히 보여주려는 의도가 좀 보이는 것 같아요. '기' 를 표현하는 방식도 제법 괜찮은 것 같고요.
    확실히 데어데블이나 아이언피스트, 고스트라이더 같은 캐릭터들은 드라마스케일에만 묶여있기엔 아까운 것 같습니다. 물론 현재까지 공개된 데어데블부터 루크케이지까지 다들 평균적으로 맘에 들었지만요.
    주역배우 핀 존스도 무술 스턴트 트레이닝을 빡세개 받고 있다고 하고, 빌런이 다수 등장할 거라고 하던데...
    넷플릭스쪽 캐릭터 라인업이 공개되었을 때 데어데블과 함께 가장 기대하던 캐릭터라고 내년 3월이 기대됩니다. 폭스쪽의 울버린 마지막편도 개봉하고, 넷플릭스의 마블 라인업 아이언피스트도 감상할 수 있어서 기대하며 기다리는 중이에요.
  • 멧가비 2016/10/13 19:42 #

    MCU의 영화 시리즈들도 그랬지만 넷플 시리즈는 더욱 장르 탐구적인 느낌이 강하더군요. 넷플 시리즈들의 장르적 다양성에 비하면 영화 타이틀들은 상대적으로 다 그게 그것처럼 보일 정도로요.
  • flame 2016/10/12 21:36 #

    확실히 액션에서 많은 아쉬움이 있었네요. 제시카 존스의 경우 스릴러적인 측면이 강한 작품이라 생각해서
    딱히 액션때문에 아쉽지는 않았는데..여기선 일반인과 부딪히는 장면이 많다보니...

    개인적으로 코튼마우스를 맡은 배우의 연기가 인상깊었습니다.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악당..
    특히 저음이 너무 좋더라구요.
  • 멧가비 2016/10/13 19:44 #

    제시카 존스가 스릴러 수사물이었던 것처럼 루크 케이지도 오소독스한 슈퍼히어로물이라기 보다는 할렘 느와르에 가깝죠. 첫 회 보는 순간 액션 활극 같은 거 포기했습니다. 뭘 해도 잘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코튼마우스 언급 공감합니다. 흔히 쩌리 악당이라고 비판받던데, 미완성 악당으로서 비극적으로 죽는 점이 오히려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배우도 상당한 아우라를 갖고 있더군요.
  • 코드0 2016/10/14 00:12 # 삭제

    이 분의 액션신은 확실히 적은데 하나하나가 임팩트가 있더라고요 거기다가 능력은 좋은데 그 능력이 발목을 잡고있다는것도요
  • 멧가비 2016/10/14 14:50 #

    네 그 부분 좋았습니다. 능력이 오히려 약점으로 작용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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