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가 공개된 이후 가해진 비판들을 구분하자면, '고지라 시리즈'의 올드 팬들에겐 일관된 비난을 받은 것과 달리 일반 대중 관객 사이에선 처참한 수준은 아니었다. 적어도 흥행에서 실패한 영화는 아니다. 나쁜 영화가 아니다. 다만 영화는 "틀렸을 뿐"이다. 방향을 잘 못 잡았다.
거대 괴수를 그저 똑같은 하나의 생명체로 간주한 점은 지극히 헐리웃 답다. 인간의 생리대로 도마뱀 괴수의 임신 여부를 테스트한다는 "설정"에선 실소가 터지지만 사소한 설정 쯤이야 관객의 여유로 넘길 수 있는 부분이고, 개인적으로는 뉴욕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거대 괴수임에도 알을 낳아 지키려는 어미의 본능 하나로 저항하다가 비극적으로 쓰러지는 고질라의 최후가 좋았다. 분명 영화 자체는 재평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그런 "취향"을 걷어내고 보면 남는 건 역시 본질적으로 잘못 된 "기획". '고지라'의 타이틀이 아니었더라면 적어도 헐리웃 크리처 SF 영화사엔 적당히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괜찮은 영화다. 그렇다고 해서 그저 과분한 타이틀을 얻어 부당한 평가를 받는 억울한 영화라고만 두둔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분명 타이틀로 끌어 모은 관객의 수를 무시할 수 없을테니 말이다.
일본의 원조 고지라는 다분히 "정서"의 괴물이다. 54년의 원작은 자연 재해와 핵폭탄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것을 추상적으로 은유하는 (괴수라는 이름의)시커먼 덩어리로 채워진 영화였다. 미국의 고질라가 소설이라면 일본의 고지라는 시(詩)에 가깝다. 또한 올드 팬들에게 있어서 고지라는 분석해서 공략하는 대상이 아니다. 시리즈마다 부침은 있었을지언정 일본의 고지라는 언제나 공포의 신이었다. 괴수 장르 원조 팬들에게 고지라는 두려워하면서 동시에 숭배하는, 머리 위의 존재로 늘 군림했다.
그것을 지극히 미국적인 사고 방식에 입각해 "개척"의 대상으로 삼아 끝내 쓰러뜨린 것은, 어쩌면 괴수 장르 팬들에게 있어선 자신들이 모시는 신을 한낱 축생의 경지로 끌어내리는 만행을 지켜보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54년 고지라가 "원폭"에 대한 공포라면, 이 영화는 어쩌면 쇼와 덴노의 "인간선언"을 상기 시키는 불쾌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즉, 영화의 평가가 나뉘는 이유가 본질적인 완성도 보다는 각자의 입장에서 오는 관점 차이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연출 각본 롤랜드 에머리히
덧글
이 영화의 제작진들은 상당수가 일본 고지라의 팬이었는데, 정작 감독인 롤랜드 에머리히는 그런 건 안중에 없었거든요. 게다가 롤랜드 에머리히의 경우 어릴 적인가 딱 한 번 일본 고지라를 본 적은 있는데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하고.
솔직히 아예 이름이 다른 괴수로 나왔으면 계속 시리즈가 나왔을지도 모릅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