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룡과강 猛龍過江 (1972) by 멧가비


이소룡 필모그래피의 주요 다섯 작품 중 연출, 각본까지 이소룡이 맡은, 온전히 이소룡만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유일한 영화. 그것은 곧, 이소룡이라는 배우가 구상했던 이상적인 영웅상을 알 수 있는 작품라는 뜻이기도 하다.


당룡은 이소룡 영화 사상 가장 캐주얼한 주인공이다. 개인적인 원한이나 복수심 대신, 어디까지나 요청된 해결사로서의 책임감과 의협심만으로 움직이는, 갈등 관계에서 벗어나 타자(他者)로서만 머물렀던 이소룡 캐릭터가 바로 당룡이다. 모나지 않은 밝은 성격과 장난끼를 감추지 않는 순박한 청년이면서도 승부에 임할 때는 진지한, 즉 완성형 영웅상을 이소룡은 자신의 아바타로 내놓은 것이다.


전작 '정무문'보다 조금 더 인간 이소룡을 노출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마치 동영상 강의처럼 "진번쿵푸"의 동작을 낱낱이 보여주고 있음은 물론이고, 식당 직원들과의 시퀀스에서는 무술을 배우는 기본 자세에 대해서도 설파하고 있다. 발코니에서의 두툼한 광배근 뽐내기는 이소룡 식 나르시시즘의 상징과도 같은 장면이다.


물론 그가 평생을 연구했던 "절권도"에 대한 철학을 일부 보여주는 장면들 역시 영화 도처에 존재한다. 식당 직원들을 가르침에 있어서 그들이 기존에 훈련하던 가라테를 부정하거나 중국 무술을 재교육-주입하려 하지 않는다. 전작 정무문에서 러시안 파이터의 발목을 깨물었듯이, 척 노리스와 싸울 때는 관절기에서 풀려나기 위해 상대의 가슴털을 움켜쥐기도 한다. 이기기 위한 모든 방법을 사용한다는, 형식의 무의미함을 그렇게 영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영화를 수 십번 반복 감상하면서도 끝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척 노리스를 반드시 죽였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개인적인 원하도 없거니와 당룡은 다른 이소룡 주인공들과 달리 분노하거나 호전적으로 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 용병인 척 노리스의 숨을 기어이 끊어 놓은 것은, 아직은 선대 홍콩 무협 영화들의 비정함을 채 씻어내지 못한, 그저 시대적인 정서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연출 각본 이소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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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실제 로케이션 장면보다 뒤에 합판을 댄 세트 촬영이 더 많다. 이 정도면 이거 거의 특촬물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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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용쟁호투 Enter the Dragon (1973) 2020-12-31 14:42:54 #

    ... 모두 그러하지만 이건 그 중에서도 특히나 과시적이다. 그리고 호평이든 혹평이든 유일하게 뭔가 할 얘기가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물리적으로 가장 과시적인 영화는 [맹룡과강]이다. 척 노리스의 패배로 유명한 그 콜로세움 시퀀스. 늘 갑빠 자랑에 여념이 없던 소룡이 형은 그 전설적인 맞짱 씬에 앞서 기나긴 스트레칭을 선보이신다. 이소 ...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