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쟁호투 Enter The Dragon (1973) by 멧가비


이소룡이 주연한 첫 미국 영화. 그래서일까,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주인공 리는 그의 다른 어떤 영화들의 캐릭터보다도 서구인들이 기억하는 "브루스 리"의 구도자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파라마운트에서 제작한 71년작 TV 시리즈 '롱 스트리트(Long Street)'에서 그가 연기했던 "충 리"의 모습과 가장 흡사하다는 점에서는 (TV 시리즈 '그린 호넷'을 제외하면) 그가 진짜 브루스 리로서의 경력을 미국에서 시작한 시점, 즉 원점회귀의 의미도 일부 본작에 있다 하겠다. 
(모르긴 몰라도 "손가락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을 미국 영화에서 가장 먼저한 게 이소룡이지 않을까.)


시류에 맞게 '007 시리즈'와 같은 첩보 장르를 표방하는 점도 이색적이고, 뭣보다 도입부 홍금보와의 대련 장면은 현대적인 MMA의 기초를 한 발 앞서 스크린에 소개한 의미있는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더불어 70년대의 블랙스플로이테이션 쿵푸 액션 스타 "짐 켈리"의 경력이 시작된 실질적 시발점이라는 의미 또한 크다.


70년대의 헐리웃 영화이니만큼 주연 롤은 백인인 존 색슨, 흑인인 짐 켈리가 일부 나눠 가졌는데 정작 본편을 보면 이소룡이 사실상 원톱 주인공이고 나머지 둘은 미국 관객들에게 조금 편하게 다가가기 위한 "당의정"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하다. 무술 대회에 참가하는 사적인 동기를 가진 인물 역시 이소룡 뿐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소룡 역의 리 역시 마치 개인적인 서사가 없는 액션 캐릭터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죽은 동생의 복수라는 동기를 가지고 있지만 원수인 오하라와의 대결은 꽤 초반부에 이뤄지기 때문에 마지막 한과의 대결은 리에게도 그저 부여받은 임무였을 뿐이다. 더불어 리는 마치 이소룡 본인의 아바타인 듯 절권도 철학을 얘기하는 장면 외에는 대사도 극히 제한하고 있다.


백 마디 말 보다 행동 하나로 표현한다는 이소룡의 평소 철학에도 부합하는 부분일 것이며, 어쩌면 그런 과묵한 Badass의 이미지가 서구인들에게 특히 어필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저예산의 퀄리티나 인물들의 연기력 등 여러가지 요소들을 배제하더라도, 헐리웃의 쿵푸 오리엔탈리즘 문화를 알리는 데에 이어 서구 문화권에서 아시안 남성이 활약할 수 있는 저변을 조금은 넓힌 등 상징적인 의미가 많은 영화라고 볼 수 있겠다.




연출 로버트 클루즈


-----


홍금보가 출연한 첫 이소룡 영화이자 성룡이 출연한 두번째 이소룡 영화. 또한 그 둘이 동시에 출연한 유일한 이소룡 영화.



덧글

  • ㅇㅇ 2016/11/21 18:22 # 삭제

    당시 마오쩌둥이 이 영화를 몰래 가져다 보고는 '왜 우리나라에는 저런배우가 없냐!'고 성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합니다.
  • 코드0 2016/11/23 03:15 # 삭제

    저기서 싱하형 짤방이 탄생했다고 하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