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론 Tron (1982) by 멧가비


영화를 요약하자면 사이버 검투사의 네트워크 서사시, 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의 세계관이지만, 본질적으로 영화의 이야기는 중세의 영웅 서사 플롯의 변주다. 트론이라는 노예 검투사가 외부 세계에서 온 이방인 플린을 만나 악을 물리칠 재목으로 성장한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트론은 영웅이고 플린은 마법사 쯤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스 신전의 모습을 빼다 박은 '레콕나이저' 등의 소소한 은유도 재미있고, 두몬트는 너무나 뻔뻔하게 (고대 그리스에 원형이 있는) 중세 판타지의 오라클을 흉내내고 있어서 귀엽기 까지 할 정도. '라이트사이클' 경기는 명백히 사이버 [벤허]라고 볼 수 있다. 그런가하면 로마 콜로세움을 연상케 하는 사이버 아레나 '게임 그리드'에서 프로그램 검투사들이 펼치는 경기들은 재미있게도 70년대 아케이드 게임들의 변형인데, 그 유명한 [퐁], [스네이크], [메이즈 워]를 이 영화에서는 목숨을 건 결투로 묘사되고 있다.


가상현실 영화의 고전으로 익히 알려져 있고 포괄적으로 가상 현실 영화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조금 다른 경우. 플린이 빨려 들어가는 곳은 현실을 모델로 한 가상 세계가 아닌, 명백히 네트워크 속의 또 다른 세계관이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체나 상호 작용들을 인격체에 빗대어 묘사했으니 굳이 따지자면 '우화'에 가깝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가상현실 영화 장르에 끼친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다.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이나 오라클 등의 프로그램 캐릭터가 이 영화에서 힌트를 얻지 않았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영화를 관통할 만큼의 주제 의식이나 사회적 메시지는 없지만 시대를 훌쩍 앞 선 사이버네틱한 디자인의 미장센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내부를 인격화한 아이디어 등이 돋보이는 면에서, 가상현실이나 인공지능 등을 소재로 한 현대 사이버펑크 영화들의 조상 쯤 되는 중요한 지점에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경계를 어이없게 허물어버린 시각적인 면에서는 요즘의 CG 영화들 대부분, 특히나 [딕 트레이시]나 [신 시티] 등은 확실히 빚을 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연출 각본 스티븐 리스버거
컨셉아트 시드 미드
애니메이션 팀 버튼 (uncre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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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멧가비 : 특촬 탐구 - SSSS.그리드맨 떡밥 분석 2018-11-19 21:31:22 #

    ... 사실상 가상현실 확정인 거겠지 게다가 다른 인물들 대사에 의하면(저게 가상현실 세계로 보이는 건 시청자 눈에만 그런 거고) 그냥 "마을"로 인식되는 거 같더만 원작이 [트론]에 가까운 세계관이라면, 애니판은 [13층] 쯤 되려나 ... more

덧글

  • 잠본이 2016/12/06 21:26 #

    매트릭스보다 더 노골적으로 영향을 받은 물건이 있죠. 컴퓨터 핵전함 폭파대작전 이라고...(읍읍)
  • 멧가비 2016/12/07 00:19 #

    컴퓨터(X) -> 콤퓨터(O)
  • 잠본이 2016/12/11 15:17 #

    아니 제가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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